"저 진나라 왕의 위세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궁정에서 꾸짖고 그 신하들을 부끄럽게 만들었소. 내가 아무리 어리석기로 염 장군을 겁내겠소? 내가 곰곰이 생각해 보건대 강한 진나라가 감히 조나라를 치지 못하는 까닭은 나와 염파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오. 만일 지금 호랑이 두 마리가 어울려서 싸우면 결국은 둘 다 살지 못할 것이오. 내가 염파를 피하는 까닭은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원망을 뒤로 하기 때문이오."
염파가 이 말을 듣고는 웃옷을 벗고 가시 채찍을 등에 짊어지고 빈객으로서 인상여의 문 앞에 이르러 사죄하며 말했다.
"미천한 저는 상경께서 이토록 너그러우신 줄 몰랐습니다."
이리하여 두 사람은 서로 화해하고 죽음을 같이 하기로 약속한 벗이 되었다.
- 사기(史記) 21-2,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진나라 왕 앞에서도 당당한 인상여의 외교술로 조나라는 진나라의 협박에서 벗어났다. 조나라 혜문왕은 인상여의 공로를 인정하여 그를 최고 직위인 상경(上卿)에 임명했다. 이 소식을 들은 염파 장군이 발끈했다. 자신은 죽음을 무릅쓰고 전장을 누비며 공을 세웠는데 고작 세 치 혀를 굴린 인상여에게 밀린 게 억울했다. 인상여를 만나면 모욕을 주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 뒤부터 인상여는 염파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병을 핑계로 조회에 나가지 않고, 염파의 수레가 보이면 멀리 돌아서 갔다. 사람들은 인상여를 보고 비겁하다고 말하고, 가신들은 부끄러워 하며 물러나려고 했다. 이때 인상여가 위와 같이 말했다. 진나라가 조나라를 치지 못하는 것은 염파와 자신이 있기 때문인데 둘이 싸우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느냐, 나라의 위급함 앞에서 사사로운 원망은 뒤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염파는 웃통을 벗은 채 가시 채찍을 지고 인상여를 찾아와 사과했다. 두 사람은 화해하고 죽음을 같이 하기로 한 벗이 되었다. 이 고사에서 '문경지교(刎頸之交)'라는 사자성어가 나왔다.
만약 이때 둘이서 권력 투쟁을 했다면 조나라는 일찍 망했을지 모른다. 인상여의 너그러움과 양보로 나라를 구했을 뿐 아니라 소중한 친구도 얻었다. 고금을 막론하고 정치판에서는 배신이 끊이지 않는다. 수십 년 지기가 원수가 되기도 한다. 대부분 눈앞의 사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인상여는 맞대응하지 않고 상대가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기를 기다렸다. 사실을 알고난 후 보인 염파의 태도도 훌륭하다. '문경지교'라는 말이 어울리는 두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