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사기[21-1]

샌. 2024. 7. 22. 10:11

"지금 신이 진나라에 이르니 왕께서는 신을 별궁에서 만나고 예절을 하찮게 여기며 아주 거만하십니다. 그리고 화씨벽을 받으시고는 비빈들에게 차례로 건네주면서 신을 희롱했습니다. 신은 왕께서 화씨벽을 받은 대가로 조나라에 성을 내줄 마음이 없음을 알았기 때문에 화씨벽을 다시 돌려받은 것입니다. 왕께서 기필코 만일 신을 협박하려고 하신다면 신의 머리는 지금 이 화씨벽과 함께 기둥에 부딪쳐 깨질 것입니다."

 

- 사기(史記) 21-1,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전국시대에 조나라는 강국인 진나라 옆에 위치해서 잦은 침략과 협박을 받았다. 염파와 인상여는 조나라 말기에 장군과 재상으로 있으면서 조나라를 지켜낸 인물이다.

 

당시 조나라는 천하의 보물이라는 화씨벽(和氏璧)을 가지고 있었다. 진나라가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었다. 겉으로는 성 열다섯 개를 줄 테니 화씨벽과 바꾸자는 제안을 했다. 거절할 수 없었던 조나라에서는 인상여를 화씨벽과 함께 사신으로 보냈다. 진나라 소공은 인상여를 홀대하며 화씨벽을 건네받고는 희롱했다. 인상여는 화씨벽에 흠이 있는 부분을 알려주겠다며 돌려받고는 위의 말처럼 진나라 왕을 꾸짖었다. 목숨을 걸지 않고는 할 수 없는 발언이었다. 인상여의 배포와 용기가 화씨벽과 조나라를 지켜냈다. 

 

그 뒤에도 정상회담을 할 때 진나라 왕이 조나라 왕을 모욕하자 인상여는 똑 같은 방식으로 대응해서 나라의 자존심을 지켰다. 진나라 신하들이 "조나라 성 열다섯 개를 바쳐 진나라 왕의 장수를 축복해 달라"고 요청하자, 인상여는 "진나라 수도 함양을 바쳐 조나라 왕의 장수를 축복해 달라"고 요구했다. 대국인 진나라 왕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대응하는 인상여의 모습은 죽음을 각오한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배경에는 진나라가 함부로 조나라를 넘보지 못하게 만드는 국력과 외교술이 있었을 것이다. 조나라는 다른 약소국들과의 합종을 통해 진나라를 견제하고 있었다.

 

인상여는 이런 공로로 상경(上卿)에 올랐다. 환관의 사인 신분에서 국가의 최고 지위에 오른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인정하더라도 이런 벼락 출세에는 늘 시기하는 사람이 따르기 마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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