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택이 말했다.
"제가 듣건대 '물을 거울로 삼는 자는 얼굴을 볼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 자는 길흉을 알 수 있다.'라고 합니다. 또 옛글에 '성공했으면 그 자리에 오래 있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저 네 사람이 화를 입었는데 당신은 어찌 거기에 머무르려 하십니까? 당신은 어째서 이 기회에 재상의 인수를 되돌려 어진 사람에게 물려주도록 하고 물러나 바위 밑에서 냇가의 경치를 구경하며 살게 되면 반드시 백이 같이 청렴하다는 이름을 얻고 길이 응후라 불리며 대대로 제후의 지위를 누릴 것입니다. 허유나 계자처럼 겸양하는 마음이 있다고 칭찬을 받으며, 왕자교나 적송자 같이 오래 살 것입니다. 재앙을 입고 삶을 마치는 것과 비교하면 어느 편이 낫겠습니까? 당신은 어디에 몸을 두려 합니까? 차마 떠나지 못하고 의심하면서 스스로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면 반드시 저 네 사람과 같은 화를 입을 것입니다. <역>에 '높이 올라간 용에게는 뉘우칠 날이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오르기만 하고 내려갈 줄 모르며, 펴기만 하고 굽힐 줄 모르고, 가기만 하고 돌아올 줄 모르는 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당신은 이 점을 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범저가 말했다.
"좋은 말씀이오. 내가 듣건대 '욕심이 그칠 줄 모르면 하고자 하는 바를 잃고, 가지고 있으면서 만족할 줄 모르면 가지고 있던 것마저 잃는다.'라고 하였소. 선생께서 다행히 나에게 가르쳐 주셨으니 나는 삼가 명을 따르겠소."
- 사기(史記) 19-4, 범저채택열전(范雎蔡澤列傳)
채택은 연나라 사람으로 변론에 뛰어난 유세가였다. 진나라에 들어가서는 범저를 만나 재상 자리는 자신에게 물려주고 은퇴해서 편하게 살라는 충고를 할 정도로 당당했다. 그만큼 받쳐주는 실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범저채택열전'에는 채택이 범저를 설득하는 말이 10페이지에 걸쳐 길게 나온다.
채택은 자리를 지키다가 화를 입은 옛 인물의 행적을 빌려 범저가 어떤 결심을 해야 하는지를 설파한다. 바로 진나라의 상군과 백기, 초나라의 오기, 월나라의 문종이다. 네 사람 모두 뛰어난 공적을 세웠지만 물러날 때를 알지 못해서 비참하게 죽었다. 범저 역시 진나라를 위해 큰 공을 이루고 부와 영예를 얻었지만, 만약 제 때에 물러나지 않는다면 앞에 든 네 사람과 다를 바 없게 되리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다.
순수하게 범저를 염려하기보다 자신이 진나라 재상이 되기 위한 욕심이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유세가라면 자신의 뜻대로 나라를 다스려보고 싶은 야망이 어찌 없겠는가. 범저는 채택의 말을 받아들이고 사표를 낸 뒤 채택을 자신의 후임으로 왕에게 추천했다. 이것만 봐도 범저가 뛰어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목표를 달성한 뒤 이룩한 많은 걸 포기하고 물러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놓지 못하고 집착하다가 파멸에 이른 경우가 역사에는 흔하다. 범저와 채택의 인계인수는 전국시대의 아름다운 한 장면이다.
채택도 다르지 않았다. 재상으로 있을 때 헐뜯는 자가 있자 미련 없이 재상에서 물러났다. 권력 다툼으로 피를 흘려야 하는 것을 아예 피한 것이다. 채택은 진시황제까지 섬기며 천하통일을 도왔다.
사마천은 범저와 채택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선비에게는 역시 우연히 때를 만나는 경우가 있다. 이 두 사람 못지 않은 재능을 가지고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두 사람도 어려운 때가 없었다면 어찌 명성을 떨칠 수 있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