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사기[19-3]

샌. 2024. 6. 22. 11:17

"우경은 어떤 인물이오?"

이때 후영이 옆에 있다가 말했다.

"사람이란 본래 알기가 힘들지니 남을 아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 우경이란 인물은 짚신을 신고 챙이 긴 삿갓을 쓴 보잘것없는 사람이지만 조나라 왕을 한 번 만나 백옥 한 쌍과 황금 100일을 받았고, 두 번 만나 상경에 임명되었으며, 세 번 만나 재상의 인수를 받고 만호후에 봉해졌습니다. 그때는 천하 사람들이 다투어 그를 알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위제가 궁지에 빠져서 곤란해져 우경에게 매달리자, 우경은 높은 작위와 봉록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재상의 인수를 풀어놓고 만호후의 봉록도 버리고 몰래 이곳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남의 곤궁함을 긴급하게 여겨 공자를 의지하러 온 것입니다. 공자께서는 '어떤 인물인가?'라고 물었습니다. 사람이란 본래 알기가 힘들지니 남을 아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신릉군은 몹시 부끄러워하며 마차를 몰아 성 밖으로 나아가 두 사람을 맞이했다. 그러나 위제는 신릉군이 처음에 만나기를 주저했다는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스스로 목을 잘라 죽었다. 조나라 왕은 이 소식을 듣고 그 머리를 얻어 마침내 진나라에 주었다. 그러자 진나라 소왕도 평원군을 조나라로 돌려보냈다.

 

- 사기(史記) 19-3, 범저채택열전(范雎蔡澤列傳)

 

 

범저의 복수혈전 마지막 장면이다. 범저는 우여곡절 끝에 진나라 재상이 된 뒤 자신을 죽이려 했던 위나라 재상 위제(魏齊)를 그냥 두고볼 수 없었다. 위제는 견디지를 못하고 조나라로 도망쳤지만 강국인 진나라의 힘을 두려워하는 왕은 그를 보호해줄 수 없었다. 다시 초나라로 숨기 위해 신릉군에게 달아났는데 조나라 재상 우경이 함께 했다. 여기 나오는 내용을 보면 현상금이 걸린 위제를 돕기 위해 재상의 지위와 재물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직접 함께 나선 우경의 신의는 대단하다. 이런 우경을 보고 신릉군은 위제를 돕고자 결심한다.

 

하지만 자신이 몸을 의탁할 곳이 어디에도 없다는 걸 확인한 위제는 스스로 칼을 뽑아 자결한다. 조나라 왕은 위제의 머리를 진나라에 넘겼고, 진나라는 인질로 잡고 있던 평원군을 조나라로 돌려보내면서 사태가 마무리되었다. 앞에서도 나왔지만 '눈을 한 번 흘길 정도의 사소한 원한에도 반드시 복수했다'는 범저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주변에서 이런 사람을 만나면 상당히 피곤할 것 같다.

 

위제가 경솔하기는 했다. 범저를 시기하는 부하의 말만 믿고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은 채 범저를 죽음 직전에까지 내몰고 모욕을 줬다. 생사의 고비에서 범저는 복수를 처절하게 다짐했을 것이다. 범저가 진나라 재상이 되어 천하의 실권을 잡았을 때 꼭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대응을 해야 했을까. 당시 전국시대는 피가 피를 부르는 힘의 논리가 지배했다. 토사구팽도 다반사로 일어나던 때에 원수를 은혜로 갚을 수 있는 아량을 기대하는 건 무리일지 모른다. 이 또한 인간사의 한 단면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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