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사기[19-1]

샌. 2024. 5. 29. 10:56

양후가 왕계에게 물었다.

"당신은 제후의 식객 따위는 데려오지 않았을 테지요. 그런 자들은 쓸모도 없으며 남의 나라를 어지럽힐 뿐이오."

왕계가 대답했다.

"감히 그러지 못합니다."

양후는 그대로 헤어져 떠나갔다. 범저가 말했다.

"저는 양후가 지혜로운 선비라고 들었는데, 일처리는 더디군요. 방금 수레 안에 사람이 숨어 있지 않나 의심하면서도 뒤져 보는 것을 잊고 가더군요."

그리하여 범저는 수레에서 내려 달아나며 말했다.

"이 사람은 반드시 후회할 것입니다."

10리 남짓 갔을 때 정말로 양후는 기마병을 보내와 수레를 뒤지게 했으나 아무도 없으므로 그냥 돌아갔다. 왕계는 드디어 범저와 함께 함양으로 들어갔다.

 

- 사기(史記) 19-1, 범저채택열전(范雎蔡澤列傳)

 

 

범저(范雎)의 일생에서 여러 결정적 장면이 나오지만 여기도 그중 하나다. 범저는 위나라 사람으로 집안이 가난하여 중대부(中大夫)인 수고(須賈)를 섬기고 있었다. 수고가 위왕의 사자로 제나라에 갈 때 범저도 따라갔다. 제나라 왕은 범저의 총명함을 보고 금과 음식을 선물로 주었다. 이것이 수고의 비위를 상하게 한 탓인지, 귀국해서는 범저가 제나라와 내통했다고 고자질했다. 범저는 심한 태형을 받고 대자리에 둘둘 말려 변소에 버려졌고, 사람들은 그의 몸에 오줌을 누며 모욕했다. 범저가 죽었다고 여기고 시체를 버렸지만 그를 아낀 정안평(鄭安平)이 거두어서 범저의 이름을 장록(張祿)으로 바꾸고 숨겨줬다.

 

이 무렵 진나라 소왕이 위나라에 왕계(王稽)를 사자로 보냈는데 정안평이 안내를 맡게 되었다. 정안평은 왕계에게 비밀리에 범저를 추천했고, 왕계는 진나라로 돌아갈 때 범저를 몰래 수레에 태워 데려가는 중이었다. 당시 진나라는 소왕의 외삼촌인 양후(穰侯)가 재상을 맡아 권세를 휘두르고 있었다. 양후가 실질적인 왕이었고, 그의 재산은 왕보다 많았다. 양후가 동쪽에 있는 자신의 영지로 가는 길에 왕계 일행과 마주치자 혹시 위나라의 유세가를 데려오지는 않는지 의심하는 대목이 여기다. 자신의 지위에 방해가 되는 요소는 미리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범저는 양후가 지나간 뒤 다시 돌아와서 확인할 것을 예상하고 달아난 덕분에 살아날 수 있었다.

 

뒤에 범저는 진나라에서 양후를 몰아내고 재상이 된 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는 데 초석을 놓은 인물이다. 만약 이때 양후에게 발각되어 죽었더라면 중국의 역사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양후를 우두머리로 하는 척신정치의 폐해를 범저가 잘라냈기 때문이다.

 

범저가 왕계의 수레에 숨어 진나라에 들어갈 때 양후는 동쪽으로, 범저는 서쪽으로 서로 반대로 향하는 이 장면은 둘의 운명을 결정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진 소왕 41년인 BC 266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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