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저가 말했다.
"네 죄가 얼마나 되는지 아느냐?"
수고가 대답했다.
"제 머리카락을 모두 뽑아 속죄해도 오히려 부족합니다."
범저가 말했다.
"네 죄목은 세 가지이다. 너는 예전에 내가 제나라와 내통한다고 여겨 나를 위제에게 모함했으니 첫 번째 죄이다. 위제가 나를 욕보이기 위하여 변소에 두었을 때 말리지 않았으니 두 번째 죄이다. 위제의 빈객들이 취하여 번갈아 가며 내게 오줌을 누었으나 그대는 모른 척했으니 세 번째 죄이다. 그러나 오늘 그대가 죽음을 당하지 않는 이유는 두꺼운 명주 솜옷을 주면서 옛정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대를 풀어주겠다."
이렇게 말을 끝냈다. 범저는 궁궐로 들어가 소왕에게 보고하고 수고를 숙소로 돌려보냈다.
수고가 범저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가자, 범저는 크게 잔치를 열고 각국 제후의 사신을 모두 불러 대청 위에 앉아 많은 음식을 대접했다. 그러나 수고만은 대청 아래에 앉혀 그 앞에 말죽을 놓고 이마에 먹물을 새겨넣은 두 명 사이에 끼여 말처럼 먹게 하고는 꾸짖어 말했다.
"나를 위하여 진나라 왕에게 '당장 위제의 목을 가져오게 하시오. 그러지 않으면 나는 수도 대량을 도륙하겠다'라고 전하시오."
- 사기(史記) 19-2, 범저채택열전(范雎蔡澤列傳)
범저(范雎)는 고난을 이겨내고 출세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동시에 '받은 대로 갚는다'는 원칙을 철저히 실천한 사람이기도 하다. 성공을 했으면 구원(舊怨)은 잊고 너그러워질 법도 하건만 범저는 끝까지 들추어내 응징했다. 여기에 한 일화가 나온다.
위나라에서 범저는 집안이 가난하여 중대부였던 수고(須賈)를 섬기고 있었다. 수고는 범저의 재능을 시기하여 위제에게 모함했고 사형을 받았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그 뒤 진나라로 탈출한 범저는 이름을 장록으로 바꾸고 재상에까지 올랐다. 진나라가 위나라를 공격하려는 계획을 알게 된 위나라에서는 수고를 진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범저 입장에서는 원수가 제 발로 찾아온 셈이었다. 범저는 허름한 옷으로 갈아입고 하인 흉내를 내며 수고를 찾아갔다. 수고가 어떻게 대하는지 속마음을 떠보려는 속셈이었다. 수고는 불쌍히 여겨 음식을 나눠주고 명주 솜옷을 주면서 위로했다. 결과적으로 이 행동 하나가 수고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다.
수고가 떠나는 날 범저는 여러 나라 사신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는데 수고만은 대청 아래에 꿇어앉히고 말죽을 말처럼 먹게했다. 죽이지 않는 대신 최대한의 모욕을 준 셈이다. 이처럼 범저의 치부책에는 은혜나 원수를 갚을 목록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사마천은 이렇게 적었다.
"범저는 자기 집 재물을 풀어 예전에 곤궁할 때 은혜를 베풀어 준 자들에게 하나하나 보답했다. 단 한 끼 식사라도 대접해 준 자에게는 반드시 이를 갚고, 눈을 한 번 흘길 정도의 사소한 원한에도 반드시 보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