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라 효성왕은 신릉군이 진비의 군사를 속여 빼앗아 조나라를 존속시켜 준 일을 고맙게 여겨 평원군과 상의하여 성 다섯 개를 공자의 봉읍으로 주려고 했다. 신릉군은 이 이야기를 듣고 교만한 마음이 생겨 공을 자랑하는 안색을 보였다. 그러자 빈객 중 한 사람이 공자에게 말했다.
"세상일에는 잊으면 안 되는 것이 있고, 또 잊어야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남이 공자에게 베푼 은덕은 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공자께서 다른 사람에게 베푼 은덕은 잊으시기 바랍니다. 또 위나라 왕의 명령이라 속여 진비의 군사를 빼앗아 조나라를 구한 것은 조나라 입장에서는 공을 세운 것이지만 위나라 입장에서 보면 충신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공자께서는 스스로 교만해져 공로가 있다고 하시니, 이는 공자로서 취할 태도가 아닙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신릉군은 자책하며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 사기(史記) 17-2, 위공자열전(魏公子列傳)
위나라 공자였던 신릉군의 최대 업적은 진나라의 공격으로 수도가 함락되기 직전의 조나라를 구한 것이다. BC 257년, 진나라가 조나라의 수도 한단을 포위해 위기에 처하자 위나라는 진비가 10만 군사를 이끌고 도와주러 출정했지만 위 왕은 진나라를 두려워 해 국경을 넘지 못하게 했다. 이때 신릉군이 거짓 왕명을 가지고 진비를 찾아가 진격을 명령했다. 하지만 수상히 여긴 진비가 거절하자 식객이었던 주해를 시켜 진비를 죽이고 자신이 병권을 쥔 뒤 진나라 군대를 공격해 포위를 풀고 철수하게 만들었다. 신릉군의 과감한 결단으로 조나라는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신릉군은 조나라 입장에서는 은인이지만, 자신의 조국인 위나라 입장에서는 왕명을 거역한 죄인인 것이다. 신릉군은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조나라에 머물며 지낼 수밖에 없었다.
이 부분은 조나라로부터 영웅 대접을 받고 우쭐해진 신릉군에게 빈객 중 한 사람이 겸손을 잊지말라고 충언을 하는 대목이다. 신릉군의 뛰어난 점은 귀에 거슬리더라도 참모들의 직언을 바로 수용한 점에 있는 것 같다. 조나라를 돕기 위해 진나라를 공격한 것도 후영과 주해라는 식객의 조언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을 믿는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쳐 충성했다. 지도자란 훌륭한 인재를 알아볼 줄 아는 것과 함께 그들의 식견을 믿고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머리는 빌리면 된다"는 김영상 대통령의 말은 옳다. 남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제일 똑똑한 줄 아는 독불장군식의 지도자는 위험하다. 자신의 잘못된 마음가짐을 지적하는 빈객의 말을 듣고 자책하며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몰랐다는 일화에서 신릉군의 위대한 점을 엿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