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원군이 말했다.
"대체로 현명한 선비가 세상에 있는 것은 비유하자면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 같아서 그 끝이 금세 드러나 보이는 법이오. 지금 선생은 내 문하에 3년이나 있었지만 내 주위 사람들은 선생을 칭찬한 적이 한 번도 없으며, 나도 선생에 대해 들은 적이 없소. 이것은 선생에게 이렇다 할 재능이 없다는 뜻이오. 선생은 같이 갈 수 없으니 남아 있으시오."
모수가 말했다.
"저는 오늘에야 당신의 주머니 속에 넣어달라고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만일 저를 좀더 일찍 주머니 속에 있게 하였더라면 그 끝만 드러나 보이는 게 아니라 송곳 자루까지 밖으로 나왔을 것입니다."
- 사기(史記) 16, 평원군우경열전(平原君虞卿列傳)
진나라가 조나라 수도 한단을 포위하자 조나라 왕은 평원군을 초나라로 보내 합종을 맺고 도움을 받고자 했다. 평원군은 자신이 돌봐주고 있는 선비들 중에서 똑똑한 20명을 선발하여 함께 가기로 했다. 평원군은 19명은 쉽게 뽑았는데 나머지 한 명을 채울 수 없었다. 이때 문하에 있던 모수(毛遂)가 자청하여 나섰다. 알지도 못하는 모수에게 대사를 맡길 수 없어 평원군은 주머니 속 송곳의 비유를 들며 거부했다. 여기에서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고사성어가 나왔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사람들에게 알려진다는 뜻이다.
평원군은 결국 모수와 함께 가기로 했고, 모수는 초나라에 가서 왕을 설득하는 데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모수의 외교술로 조나라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평원군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다시는 감히 선비를 고르지 않겠다. 내가 지금까지 선비를 고른 수는 많다면 1000명이 되겠고 적어도 100여 명은 될 것이다. 나는 스스로 천하의 선비를 잃은 적이 없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이번 모 선생의 경우에는 실수하였다. 나는 다시는 감히 선비를 고르지 않겠다."
평원군 역시 선비를 우대하면서 천하의 인재를 모은 전국시대 사공자 중 한 사람이다. 이들은 자신의 과오가 있다면 깨끗이 인정하고 고쳤다. 또한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귀를 열어두었다. 저만이 옳다는 확신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지도자가 제 고집에 빠질 때 나라는 위태로워진다. 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