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사기[15-2]

샌. 2024. 3. 23. 09:38

풍환이 말했다.

"살아 있는 것이 반드시 죽게 되는 것은 만물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부유하고 귀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가난하고 지위가 낮으면 벗이 적어지는 것은 일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당신은 혹시 아침 일찍 시장으로 가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습니까? 새벽에는 어깨를 맞대면서 앞다투어 문으로 들어가지만 날이 저물고 나서 시장을 지나는 사람들은 팔을 휘저으면서 시장은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그들이 아침을 좋아하고 날이 저무는 것을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날이 저물면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물건이 시장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당신이 지위를 잃자 빈객이 모두 떠나가 버렸다고 해서 선비들을 원망하여 일부러 빈객들이 오는 길을 끊을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빈객들을 대우하십시오."

맹상군은 두 번 절하고 말했다.

"삼가 말씀대로 하겠소. 선생의 말씀을 들은 이상 그 가르침을 받들어 따르겠소."

 

- 사기(史記) 15-2,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

 

 

한창 잘 나갈 때 맹상군에게는 따르는 식객이 3천 명이나 되고 사방에 명성이 자자했다. 제나라 왕은 맹상군의 명성이 자신보다 높아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맹상군을 재상에서 물러나게 했다. 그러자 별 볼 일 없게 된 걸 알게 된 맹상군의 식객들도 대부분 떠나갔다. 지위와 재산을 잃은 맹상군은 세상사에 환멸을 느꼈을 것이다.

 

맹상군에게는 풍환(馮驩)이라는 빈객이 있었다. 풍환은 맹상군을 모시지만 모든 면에서 맹상군보다 뛰어난 자질을 가진 인물이다. 수 천 명의 식객이 등을 돌리고 떠나갔어도 풍환은 맹상군 곁을 지켰다. 그리고 제나라와 진나라의 패권 다툼을 이용하여 맹상군이 다시 제나라의 재상으로 등용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맹상군이 예전의 권력과 부를 가지자 풍환은 식객들을 다시 맞으려 했다. 이때 맹상군이 탄식하며 말했다.

"나는 3천 명이나 되는 식객을 돌봐주었소. 그런데 내가 재상 자리에서 물러나자 다들 나를 버리고 떠나갔소. 이제 선생의 힘으로 다시 재상 자리에 복귀할 수 있었지만 다른 식객들은 무슨 낯으로 나를 볼 수 있겠소. 만약 다시 나를 만나려고 하는 이가 있다면 반드시 그 얼굴에 침을 뱉어 크게 욕을 보이겠소."

 

위의 글은 이때 풍환이 맹상군을 달래며 한 말이다. 세상 원리와 인심이란 게 원래 그러하니 괘념치 말라는 충고다. 부유하고 지위가 높으면 사람들이 몰려오고, 가난하고 지위가 없으면 벗들이 적어진다. 풍환은 이를 시장을 찾는 사람들에 비유한다. 즉, 사람들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걸 안다면 세상이나 사람에 대해 원망할 이유가 없다. 풍환은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나 인간의 이기성에 대해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맹상군이 사람을 좋아하고 어질다는 평가를 듣는 배경에는 풍환이 있었다. 사마천은 '맹상군열전'을 쓰면서 주인공인 맹상군보다 풍환에게 더 비중을 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탁월한 참모인 풍환이 있었기에 맹상군의 명성도 가능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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