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사기[14-1]

샌. 2024. 2. 27. 10:58

맹자는 추나라 사람이다. 그는 자사(子思)의 제자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맹자는 학문의 이치를 깨우친 뒤 제나라 선왕을 섬기려고 했지만, 선왕이 자신의 주장을 실행하지 않으므로 양나라로 갔다. 양나라 혜왕도 맹자의 주장을 입으로만 찬성하고 실제로는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그의 주장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서 실제 상황에 들어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무렵 진나라는 상군(商君)을 등용하여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병력을 강화했으며, 초나라와 위나라는 오기(吳起)를 등용하여 싸움에서 이겨 적국을 약화시켰다. 제나라 위왕과 선왕이 손자(孫子)와 전기(田忌) 같은 인물을 기용해서 세력을 넓혔으므로 제후들은 동쪽으로 제나라에 조공을 바쳤다. 천하는 바야흐로 합종과 연횡에 힘을 기울이고 남을 침략하고 정벌하는 것만을 현명하다고 여기는 때였다.

그런데 맹자는 요임금과 순임금과 하, 은, 주 삼대 성왕들의 덕치만을 부르짖으므로 가는 곳마다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사기(史記) 14-1, 맹자순경열전(孟子筍卿列傳)

 

 

사마천이 맹자에 대해 기술한 것은 이것이 전부다. 지금의 유명세에 비하면 사마천 당시에는 공자나 맹자를 비롯해 유가학파가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 같지는 않다. 대신 사마천은 병가학파에 후한 점수를 준다. 강한 나라만 살아남는 춘추전국시대 상황과 연관 지으면 납득할 만하다. 사마천은 맹자의 주장이 시대 흐름과 맞지 않았기 때문에 군주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사마천은 <맹자>를 읽고 맹자가 양 혜왕을 만나는 장면에 감명을 받았던 듯하다. 혜왕이 맹자에게 '어떻게 하면 우리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맹자는 답했다.

"왕께서는 하필이면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仁)과 의(義)가 있을 뿐입니다."

이 한 마디에 사마천은 책 읽기를 멈추고 세상 혼란의 근원이 이(利)의 추구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적었다. 임금부터 백성까지 모두가 이익만을 좋아한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는가. 누구나 맹자의 주장에 공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 문제다. 명분과 원칙만 고집하다가는 당장 생존이 위태롭다. 힘센 자가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걸 온몸으로 보여준 대표적인 사람이 진시황이다. 분서갱유의 참화를 겪고도 유학은 살아남았고 뒷날에는 중국의 통치 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처절한 생존 투쟁의 바탕에는 오탁한 현실을 극복하고 저항하면서 인간 정신을 지켜내려는 도도한 흐름이 있음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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