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전은 병사 60만 명을 이끄는 장수가 되었다. 시황제는 몸소 파수 가까이 나와 왕전을 전송했다. 완전은 가는 도중에 훌륭한 논밭과 택지와 정원과 연못을 내려 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그러자 시황제가 말했다.
"장군은 빨리 떠나시오. 어찌 가난 따위를 걱정하시오?"
왕전이 말했다.
"왕의 장군이 되어 공이 있어도 끝내 후(侯)로 봉해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왕의 관심이 신에게 쏠려 있을 때를 빌려 신도 정원과 연못을 부탁드려 자손들의 재산을 만들어 두려는 것뿐입니다."
시황제는 크게 웃고 말았다.
- 사기(史記) 13-2, 백기왕전열전(白起王翦列傳)
왕전( 王翦)은 전국시대 말기에 진시황을 섬기며 진나라가 천하통일을 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한 장군이다. 왕전은 조, 한, 위나라를 멸망시켰고 초나라에게까지 항복을 받았다. 왕전의 아들은 연과 제나라를 정복하여 천하통일을 완성했다.
왕전과 함께 공을 세운 장수로는 젊은 이신(李信)이 있었다. 초나라를 공격하려 할 때 진시황이 얼마의 병력이 필요하냐고 물었을 때 이신은 20만, 왕전은 60만이라고 답했다. 진시황은 이신에게 임무를 맡겼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쓴맛을 보고서야 진시황은 왕전에게 60만 병력을 주면서 출정식을 마치고 전송을 했다. 왕전은 가는 도중에 탐나는 땅을 보자 진시황에게 그 땅을 내려달라고 청했다. 진시황은 웃으며 청을 받아주었다. 그 뒤로도 왕전은 다섯 번이나 이런 청을 올리면서 땅 욕심을 부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보좌관이 너무 지나치지 않느냐고 하니 왕전은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 않소. 진나라 왕은 포악하고 다른 사람을 믿지 않소. 그런데 지금 진나라 군사를 모두 나에게 맡겼소. 내가 자손을 위한 재산을 만들려고 많은 논밭과 정원과 연못을 요청함으로써 다른 뜻이 없음을 보여 스스로를 안전하게 하지 않는다면 진나라 왕은 가만히 앉아서 나를 의심할 것이오."
왕전은 진시황의 속마음까지 읽어내는 현명한 장군이었다. 앞에 나온 백기 장군이 자존심 강하면서 왕의 눈치를 살피지 않았다면 왕전은 무척 조심하는 인물이었다. 일부러 땅에 욕심을 부리면서 자신에게 다른 야망이 없음을 보인 것이다. 그 결과 백기는 왕이 내린 칼을 받고 자결할 수밖에 없었지만 왕전은 아들, 손자까지 장군을 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왕전에 대한 사마천의 평가는 박하다. 시황제에게 아첨하여 편하게 있을 곳을 구했지만 국가의 기본을 튼튼하게 만들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BC 221년에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긴 했으나 15년 만에 망했으니 그렇게 볼 만도 할 것 같다. 왕전의 손자 왕이는 항우와의 전투에서 지고 포로가 되었다. 사마천은 다른 사람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무릇 3대에 걸쳐 장군이 된 자는 반드시 싸움에서 지게 되오. 반드시 싸움에서 지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소? 그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사람을 죽이고 쳐부순 것이 많아서 그 후손이 상서롭지 못한 기운을 받았기 때문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