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사기[11-2]

샌. 2024. 1. 11. 10:54

시황제는 감라를 불러서 보고 조나라에 사자로 보냈다. 조나라 양왕은 교외까지 나와서 감라를 맞이했다. 감라가 조나라 왕에게 말했다.

"왕께서는 연나라 태자 단이 진나라에 들어와 인질이 되었다는 사실을 들으셨습니까?"

"들었소."

"장당이 연나라 재상으로 간다는 말을 들으셨습니까?"

"들었소."

"연나라 태자 단이 진나라에 인질로 들어온 것은 연나라가 진나라를 속이지 않는다는 뜻이고, 장당이 연나라 재상으로 간다는 것은 진나라가 연나라를 속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연나라와 진나라가 서로 속이지 않으면 조나라를 칠 테니 조나라에는 위험한 일입니다. 연나라와 진나라가 서로 속이지 않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조나라를 쳐서 하간의 땅을 넓히기 위함입니다. 왕께서는 이 기회에 신을 통해서 진나라에 성 다섯 개를 넘겨주어 하간 땅을 넓히게 하십시오. 그러면 연나라 태자를 돌려보내 진나라가 강한 조나라와 함께 연나라를 치도록 하겠습니다."

조나라 왕은 그 자리에서 성 다섯 개를 진나라에게 나누어 주고 하간 땅을 넓히게 하였다. 진나라는 연나라 태자를 돌려보냈다. 조나라는 연나라를 쳐서 상곡의 성 서른 개를 빼앗아 열한 개를 진나라에 주었다.

감라가 진나라에 돌아와 보고하니, 이에 감라를 상경(上卿)으로 삼고 예전에 감무가 가지고 있던 전답과 저택을 감라에게 내려 주었다.

 

- 사기(史記) 11-1, 저리자감무열전(樗里子甘戊列傳)

 

 

감라(甘羅)는 감무의 손자로 열두 살에 여불위의 참모로 들어갔다. 뛰어난 재능을 발휘한 감라는 능력을 인정받아 진시황제에 의해 상경의 직위를 얻었다. 십대 초반에 강국인 진나라의 재상이 된 것이다.

 

당시는 진나라, 조나라, 연나라가 삼각 관계로 얽혀 있었다. 이때 감라가 등장하여 조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왕을 설득한다. 감라의 계책으로 진나라는 공짜로 땅을 얻고, 조나라와 연나라가 서로 싸우게 만들어 두 나라의 국력을 약하게 만든다. 전국시대 말기의 진나라가 강성해지는 데는 이런 책사들의 역할이 큰 몫을 했다. 이 공로로 감라는 많은 재산과 함께 상경이라는 직책을 받게 된다.

 

전국시대의 책사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어떤 비열한 방법도 마다하지 않는다. 세 치 혀로 상대를 속이자면 비상한 재주가 필요했을 것이다. 잘못했다가는 한 순간에 목숨이 날아가는 직업이다. 열두 살에 이미 이런 세계에 뛰어든 감라는 정치 천재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지 싶다. 또한 어린 감라를 상경에 앉힌 진시황의 파격적인 인사도 놀랍다. 능력을 최우선으로 하는 인사 정책이 강력한 진나라를 만들었을 것이다.

 

사마천은 말한다. "감라는 나이가 어리지만 한 가지 기묘한 계책을 생각해 내어 후세에 이름이 일컬어지게 되었다. 이들은 행실이 성실한 군자는 아니지만 전국시대의 책사였다. 바야흐로 진나라가 강성해졌을 때 천하는 더욱 권모와 술수로 치달으려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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