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증삼이 비읍에 있을 때 일입니다. 노나라 사람 가운데 증삼과 이름과 성이 똑같은 자가 사람을 죽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증삼의 어머니에게 '증삼이 사람을 죽였습니다'라고 했지만 그 어머니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태연하게 베를 짰습니다. 조금 뒤 또 한 사람이 와서 '증삼이 사람을 죽였습니다'라고 했지만 그 어머니는 역시 태연하게 베를 짰습니다. 그러나 조금 뒤 또다시 한 사람이 와서 증삼의 어머니에게 '증삼이 사람을 죽였습니다'라고 하자 그 어머니는 베 짜던 북을 내던지고 베틀에서 내려와 담을 넘어 달아났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어진 증삼에 대한 믿음이 있었지만 세 사람이나 그를 의심하자 겁을 먹었습니다. 지금 신은 증삼처럼 어질지 못하고, 왕께서 신을 믿는 마음도 증삼의 어머니가 아들을 믿는 마음만 못한데, 신을 의심하는 자가 어디 세 사람뿐이겠습니까? 신은 왕께서 북을 내던지지는 않을까 두렵습니다."
- 사기(史記) 11-1, 저리자감무열전(樗里子甘戊列傳)
저리자와 감무는 전국시대 진나라의 대표적인 책사다. 둘은 무왕 때에 각각 좌승상, 우승상을 맡으며 진나라의 국력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 저리자는 우스갯소리나 행동을 잘하고 지혜도 풍부하여 사람들이 '지혜주머니[智囊]'이라고 불렀다. '힘은 임비요, 지혜는 저리자'라는 진나라 속담도 있다. 이 편에서 사마천은 저리자, 감무, 감라를 소개하는데 셋 중에서는 감무에게 제일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때는 진나라 무왕 3년이었다. 무왕은 감무에게 주나라로 가는 길을 뚫기 위해 한나라를 치도록 했다. 감무가 보기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힘든 과업이었다. 감무는 일이 잘 진척되지 않았을 때 조정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비방하는 일이 두려웠다. 위의 발언은 감무가 무왕에게 증삼에 관계된 고사를 인용하면서 왕의 마음이 변치 않기를 바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증삼(曾參)은 효성이 지극한 공자의 제자였다.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믿음도 돈독했다. 그런데 아들이 사람을 죽였다는 소식을 세 번이나 듣자 어머니의 마음도 흔들렸다. 끝내는 베 짜던 북을 내던지고 담을 넘어 달아났다고 한다. 어머니마저 이럴진대 왕의 마음이 변하지 않으리라고 어찌 확신할 수 있겠는가. 절대로 타인의 비방을 듣지 않겠다는 왕의 약속을 받은 뒤 감무는 군사를 출동시켰다.
그 뒤에 실제로 감무가 우려한 일이 일어났고, 감무는 왕에게 전의 약속을 상기시키면서 위기를 모면했다. 마침내는 적국 6만 명의 머리를 베고 한나라 의양을 빼앗을 수 있었다. 아무리 왕의 총애를 받더라도 여러 달 동안 자리를 비우면 정적들이 가만있지 않는 법이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는 어떤 계략을 꾸며서라도 상대를 제거하려고 한다. 왕이 귀가 얇다면 더 위험에 노출된다. 증삼의 어머니도 같은 말을 여러 차례 듣고서는 마음이 흔들렸다. 감무는 이런 사람의 마음을 잘 알았다. 모든 일에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안전장치가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