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의는 학업을 마치자 유세하러 제후들을 찾아갔다. 장의는 일찍이 초나라 재상과 함께 술을 마신 적이 있는데, 얼마 후 초나라 재상이 구슬을 잃어버렸다. 재상의 문하 사람들이 장의를 의심하고 이렇게 말했다.
"장의는 가난하고 행실이 좋지 않습니다. 틀림없이 이자가 재상의 구슬을 훔쳤을 것입니다."
그러고는 모두 함께 장의를 붙들어 수백 번 매질을 했으나, 장의가 구슬을 훔쳤다고 말하지 않으므로 풀어 주었다.
장의의 아내가 말했다.
"아! 당신이 글을 읽어 유세하지 않았던들 어찌 이런 수모를 겪었겠습니까?"
그러자 장의는 자기 아내에게 말했다.
"내 혀가 아직 붙어 있는지 아닌지 보시오."
장의의 아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혀는 남아 있네요."
장의가 말했다.
"그럼 됐소."
- 사기(史記) 10-1, 장의열전(張儀列傳)
앞에 나온 소진(蘇秦)이 합종책의 대표 인물이라면, 장의(張儀)는 연횡책의 대표 인물이다. 두 사람은 같은 스승 밑에서 배웠지만 각자 다른 길을 갔다. 이 대목은 장의의 활동 초기에 일어났던 에피소드다.
장의가 아직 유명해지지 않았을 때 초나라에 유세를 갔다가 도둑으로 몰려 매를 흠씬 두들겨 맞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장의에게 글공부해서 세객이 된 게 잘못이었다고 한탄을 한다. 이때 장의의 대응이 유머러스하다. "내 혀가 아직 붙어 있는지 보시오."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도 혀만 살아 있으면 된다. 세 치 혀로 세상을 쥐락펴락하겠다는 장의의 포부가 읽히는 대목이다.
사마천은 근엄한 역사서에 이런 일화를 삽입하여 장의가 어떤 인물인지, 또한 부와 명성을 좇아 제후를 찾아다니던 당시 유세가들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짧은 에피소드 하나가 백 마디 설명보다 낫다는 걸 사마천은 알고 있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