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사기[8]

샌. 2023. 11. 19. 10:57

법령에 따르면 백성을 열 집 또는 다섯 집을 한 조로 묶어 서로 잘못을 감시하도록 하고, 한 집이 죄를 지으면 그 조가 똑같이 벌을 받는다. 죄 지은 것을 알리지 않는 사람은 허리를 자르는 벌로 다스리고, 또 그것을 알린 사람에게는 적의 머리를 벤 것과 같은 상을 주며, 죄를 숨기는 사람은 적에게 항복한 사람과 똑같은 벌을 준다. 백성 가운데 한 집에 남자가 두 명 이상인데 세대가 분리되어 있지 않으면 부세를 두 배로 한다. 군대에서 공을 세운 사람은 각각 그 공의 크고 작음에 따라 벼슬을 올려 주고, 사사로이 싸움을 일삼은 자는 각각 가볍고 무거움에 따라 크고 작은 형벌을 받는다. 본업에 힘써 밭을 갈고 길쌈을 하여 곡식이나 비단을 많이 바치는 사람에게는 부역과 부세를 면제한다. 상공업에 종사하여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와 게을러서 가난한 자는 모두 체포하여 관청의 노비로 삼는다. 군주의 친척이나 종족이라도 싸워 공을 세우지 못하면 심사를 거쳐 족보에 소속되지 않도록 한다. 신분상의 존비, 작위와 봉록의 등급을 분명히 하여 각자 차등을 두고 토지와 집, 신첩, 의복의 등급을 그 집안의 작위에 따라 차등을 둔다. 군대에서 공을 세운 사람은 영예를 누리지만 공을 세우지 못한 사람은 부유해도 존경받을 수 없다.

 

- 사기 8, 상군열전(商君列傳)

 

 

상군(商君)이라 불린 상앙(商鞅, BC 390~338)이 공포한 법령의 주요 내용이다. 상앙은 법가(法家)를 대표하는 인물로 원래 위나라 공자였다. 자기 나라에서는 등용되지 못하자 진나라로 건너가 효공을 설득하여 옛 제도를 폐지하고 새로운 법을 만들어 엄격히 적용하는 개혁 정책을 폈다. 강압적이며 전제적인 정책을 통해 상앙은 진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뒷날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 기틀을 만들었다.

 

법을 지키면 이롭다는 사실을 백성이 믿도록 하기 위해 상앙은 기발한 퍼포먼스를 한다. 상앙은 나무 막대를 도성 남쪽 문에 세우고 이 막대를 북문으로 옮기는 사람에게는 10금을 주겠다고 했다. 도성 사람들은 이상히 여길 뿐 믿지 않고 외면했다. 상앙은 상금을 50금으로 올렸는데, 이때 어떤 사람이 막대를 옮겨 놓자 상앙은 즉시 50금을 주어 속이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새로 만든 법은 믿음 속에서 꽃필 수 있다는 걸 상앙은 알았던 것이다. 마침내 새 법령을 백성이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법치 10년 만에 진나라에서는 길에 물건이 떨어져도 주워 가는 사람이 없었고 도적이 사라졌다고 한다. 백성은 사사로운 싸움에는 두려워했으나 전투에는 용감했으니, 진나라는 강국이 되어 갔다. 상앙을 법을 강력하게 집행하는 과정에서 인심을 잃고 적을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상앙은 열다섯 읍을 받는 등 부귀권세를 누렸지만, 효공이 죽고 혜문왕이 즉위하면서 지지 기반을 잃은 뒤 사지가 찢기는 거열형을 당해 죽었다. 나라는 부강하게 만들었을지 몰라도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망한다는 사실을 상앙은 보여준다. 어느 시대에나 이런 경우는 허다하게 찾아볼 수 있다. 강하면 부러지는 것이다.

 

"상군은 타고난 성품이 각박했다." 상앙에 대한 사마천의 인물평도 부정적이다. 그가 효공에게 유세한 것도 개인의 욕심을 위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상앙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인심을 잃고 불행한 죽음을 맞았다. 무릇 어떤 지위에 있든지 겸손하며 조신하게 살 일이다. 타인을 가혹하게 대하면 언젠가는 앙갚음을 당한다. 권력에 도취해서 오만해지면 결말은 뻔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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