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사기[7-6]

샌. 2023. 11. 10. 11:24

공자가 세상을 떠났어도 그를 우러러보는 제자들의 마음은 그치지 않았다. 유약의 얼굴이 공자와 닮았다고 하여 제자들은 그를 스승으로 추대하고 공자를 모시듯이 섬겼다. 어느 날 한 제자가 나아가서 다음과 같이 물었다.

"예전에 공자께서는 밖에 나갈 때에 제게 우산을 준비시켰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말 비가 내렸습니다. 제가 '선생님께서는 비가 올 줄을 어떻게 아셨습니까?'라고 물으니, 선생님께서는 <시>에서 '달이 필(畢, 황소자리)에 걸려 있으면 큰비가 내린다'라고 하지 않았느냐? 어제 저문 달이 필이라는 별에 없더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다른 날 달이 필에 걸려 있는데도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또 상구가 나이가 많도록 자식이 없으므로 그 어머니가 두 번째 아내를 얻게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공자께서 그를 제나라로 심부름을 보내려고 하셨습니다. 상구의 어머니는 뒤로 미뤄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공자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상구는 마흔이 넘으면 반드시 다섯 아들을 두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뒤 정말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감히 묻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이것을 알 수 있었을까요?"

유약은 대답할 수 없어 잠자코 앉아 있기만 하였다. 그러자 어떤 제자가 일어나서 말했다.

"유약은 그 자리에서 물러나 주시오. 그곳은 당신이 앉아 있을 자리가 아니오."

 

- 사기 7-6,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

 

 

사마천은 주로 <논어>의 기록을 인용하며 공자의 제자를 소개하는데, 이 대목은 <논어>에 나오지 않는 내용이다. 공자가 돌아가신 뒤 스승의 가르침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여러 학파로 나누어졌는데, 결국에는 증자, 맹자로 이어지는 계열이 정통파가 되었다. 초기 학파 중에는 유약을 따르는 그룹도 있었던 것 같다. 

 

유약(有若)은 공자보다 마흔세 살 아래인 제자였다. 여기서는 얼굴이 공자를 닮아서 유약을 스승으로 추대했다고 나온다. 학문의 깊이가 아니라 생김새로 판단했다는 점에서 유약 그룹에 대해 비꼬는 느낌을 받는다. 또한 공자를 신격화하는 태도도 보인다. 유약이 이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자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반기를 든다. 공자 사후에 생긴 제자들 사이의 갈등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이는 학문이든 종교든 정치든 인간이 모인 곳에서는 상시로 벌어지는 일이다. 사소한 차이가 나중에는 눈덩이처럼 커져 피비린내를 풍기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분야가 종교다. 같은 창시자를 섬기지만 교리의 차이로 갈라져 원수가 되어 있는 예가 허다하다. 유교를 종교로 보느냐 아니냐의 논쟁이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유학자들은 공자를 신(神)과 결부시키지는 않았다. 공자의 제자들이 현명했다기보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배경 차이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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