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사기[7-5]

샌. 2023. 10. 22. 10:36

공자가 죽은 뒤 자사(子思)는 세상을 등지고 풀이 무성한 늪가에 숨어 살았다. 어느 날 위나라 재상으로 있던 자공이 말 네 필이 끄는 마차를 타고 호위병과 함께 잡초를 헤치며 궁핍한 마을로 들어섰다. 지나가다가 자사에게 인사했다. 자사는 낡아빠진 옷차림으로 그를 맞이하였다. 자공은 그의 초라한 행색을 부끄럽게 여겨 이렇게 말했다.

"어쩌다 병이 들었습니까?"

자사가 말했다.

"내가 듣건대 재물이 없는 것을 가난이라 하고, 도를 배우고도 실행하지 못하는 것을 병들었다고 한다고 들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가난하기는 하지만 병들지는 않았습니다."

자공은 수치스러워하며 좋지 않은 마음으로 떠났다. 그는 평생 동안 자신의 말이 지나쳤음을 부끄럽게 여겼다.

 

- 사기 7-5, 중니제자열전(仲尼第子列傳)

 

 

<논어> 헌문편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옛날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 배웠는데, 요즘 사람들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배운다[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

위기지학(爲己之學)은 나 자신을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이다. 공부를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인격을 수양하여 도덕적 완성을 추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반면에 위인지학(爲人之學)은 남에게 과시하고 보여주기 하는 공부다. 남에게 인정받고 칭찬받으며 출세를 하기 위한 데 목적이 있다. 공자가 학(學)의 가치를 높게 본 것은 분명 위기지학으로서의 의미가 클 것이다.

 

여기서는 공자의 제자 중 자사(子思)와 자공(子貢)이 대비되어 나온다. 두 사람의 학문을 대하는 태도가 극명하게 비교된다. 스승에게 배움을 받은 후 자사는 은둔을 택했고, 자공은 출사(出仕)의 길에 나섰다. 자사는 도가(道家) 쪽에 가까운 인물인 것 같다. 안회도 마찬가지다. 자공은 학문을 도구로 하여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리는 길을 갔다. 공자도 십수 년간 유랑하며 자신의 뜻을 펼칠 군주를 찾아다닌 걸로 볼 때 그런 길에 적극적이었다. 다만 수신제가가 되지 않은 치국(治國)을 경계했다.

 

자공이 자사를 찾아간 것은 뻐기거나 위세를 자랑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자공이 자신의 행위를 부끄럽게 여겼다는 사실에서 그의 인격이 허술하지 않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서로 다른 길을 간 두 제자의 만남이 묘한 여운을 남기는 장면이다. 정치인이라면 최소한도 이 정도의 인간성은 갖추어야 한다고 사마천은 생각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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