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하여 여섯 나라는 합종하여 힘을 합치게 되었다. 소진은 합종 맹약의 우두머리가 되고 아울러 여섯 나라의 재상을 겸하였다.
소진은 북쪽으로 조나라 왕에게 일의 경과를 보고하러 가는 길에 낙양을 지나게 되었다. 기마와 짐을 실은 수레를 비롯하여 제후들마다 사자를 보내 주어 전송하는 자가 매우 많아 왕의 행차에 견줄 만하였다. 주나라 현왕(顯王)은 이런 소문을 듣고 두려워 길을 쓸도록 하고 교외까지 사람을 보내 위로하게 하였다. 소진의 형제와 아내와 형수가 곁눈으로 볼 뿐 감히 고개를 들어 보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식사를 하였다. 소진이 웃으면서 그의 형수에게 말했다.
"어찌하여 전에는 오만하더니 지금은 공손합니까?"
형수는 몸을 굽혀 기어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사죄하며 말했다.
"도련님의 지위가 높고 재물이 매우 많을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소진은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이 한 몸도 부귀해지자 친척들이 두려워하고 가난하고 천하면 업신여기는데, 하물며 뭇사람들에랴! 만일 나에게 낙양성 주변에 밭이 두 이랑만 있었던들 어찌 여섯 나라 재상의 인수(印綬)를 찰 수 있었을까?"
그리하여 소진은 천금을 풀어 종족과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 사기 9, 소진열전(蘇秦列傳)
소진(蘇秦)이 활약하던 BC 4세기에는 진(秦), 조(趙), 연(燕), 제(齊), 위(魏), 한(韓), 초(楚) 등 일곱 나라가 대립하고 있었다. 이중 제일 강국은 진이었다. 이에 나머지 여섯 나라가 힘을 합쳐 진나라에 대항하자는 합종책을 기획한 전략가가 소진이다. 소진은 유세가로서 여섯 나라를 차례로 돌며 연합하여 진나라에 맞서자고 제후들을 설득했고 동맹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 동맹 후 진나라는 15년 동안 동쪽으로 진출하지 못했다.
소진은 주나라 낙양 사람으로 제나라에 가서 공부하고 돌아왔지만 곤궁한 처지여서 가족들한테서 구박을 받았다. 소진은 슬퍼하며 문을 걸어 잠그고 1년간 방에 틀어박혀 책과 씨름했다. 이때 졸음을 이기기 위해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며 자신을 채찍질했다고 전한다. 세상으로 나온 소진은 조나라를 중심으로 여섯 나라가 동맹을 맺도록 하는 외교에 성공한다. 동시에 여섯 나라의 재상을 겸임하는 출세도 했다. 자신의 목표였던 높은 벼슬과 영화를 동시에 얻은 것이다.
이 대목은 소진이 동맹을 완성하고 돌아오는 길에 고향에 들러 가족을 만나는 장면이다. 이때가 소진의 최절정기였다.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형수를 비롯해 가족들은 머리도 들지 못했다. 소진은 부귀하면 우러러보고 가난하면 업신여기는 세상 인심을 다시 한번 씁쓸하게 되새김했을 것이다.
사마천이 전하는 소진의 마지막 장면도 인상적이다. 합종이 깨지면서 여섯 나라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소진은 제나라에 있던 중 자객의 기습을 받아 치명상을 입었다. 소진은 죽어가던 중 제나라 왕에게 반역죄로 자신을 거열형에 처하면 자객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객은 상을 받기 위해 나타났고, 왕은 자객과 배후에서 조종했던 대부를 처형했다. 소진은 죽어가면서도 꾀를 내어 원수에게 복수한 것이다.
사마천은 소진의 외교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 각 나라를 돌며 군주를 설득하는 대화 내용을 상세히 소개한다. 하지만 부귀공명에 대한 소진의 집착에 대해서는 세간의 평가가 그리 좋지 않았던 듯 싶다. 소진의 경력과 사적을 적으면서 그가 나쁜 평가를 받지 않도록 배려했음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