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사기[10-2]

샌. 2023. 12. 20. 11:07

진나라가 제나라를 치려고 하자, 제나라와 초나라는 합종을 맺었으므로 이에 장의는 초나라로 가서 상황을 살펴보려고 했다. 초나라 회왕은 장의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좋은 숙소를 비워 놓았다. 장의가 도착하자 회왕은 몸소 장의를 숙소로 안내하고 이렇게 물었다.

"이곳은 외지고 누추한 곳입니다. 선생은 이 나라에 무엇을 가르쳐 주려고 합니까?"

장의는 초나라 왕을 설득하여 말했다. 

"대왕께서 진정 저의 말을 옳다고 여겨 관문을 닫아걸고 제나라와 맺은 합종의 약속을 깨신다면 신은 상과 오 일대의 땅 600리를 초나라에 바치고, 진나라 공주를 왕의 첩이 되게 하며, 진나라와 초나라는 서로 며느리를 맞아 오고 딸을 시집보내는 사이가 되어 영원히 형제 나라가 되게 하겠습니다. 이는 북쪽으로는 제나라를 약화시키고 서쪽으로는 진나라를 이롭게 하는 계책으로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초나라 왕은 매우 기뻐하며 이를 받아들였다.

 

- 사기(史記) 10-2, 장의열전(張儀列傳)

 

 

조진모초(朝秦暮楚)라는 말이 있다. '아침에는 진나라에 있다가 저녁에는 초나라에 가 있다'는 뜻으로, 전국시대에 이 나라 저 나라를 바삐 왕래하는 유세객의 모습을 묘사한 사자성어다. 여기에 나오는 장의도 진나라에서 초나라로 급히 달려간다. 진나라가 제나라를 공격하자면 초나라와 제나라의 합종을 깨야 하기 때문이다. 장의가 초나라 회왕을 설득하는 골자는 진나라 땅 600리를 줄 테니 제나라와의 동맹을 파기하라는 것이다.

 

공짜로 생기는 600리 땅에 현혹한 초나라 회왕은 장의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제나라를 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렇게 해서 진나라와 제나라는 국교를 맺게 되었다. 초나라와 제나라를 이간시키는 데 성공한 장의는 진나라로 돌아와서는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땅 6리를 주겠다고 조롱한다. 열 받은 초나라가 진나라를 공격했으나 대패를 하고 도리어 자기 땅마저 뺏기게 되었다. 이 정도면 장의는 희대의 사기꾼이 아닌가. 전국시대를 잘 보여주는 <사기>의 에피소드다.

 

국가의 이익 앞에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정당화 된다. 특히 전국시대는 아수라장이었다. 장의는 비열한 방법으로 초나라를 농락했다. 사마천은 장의, 소진 등 당시의 유세객들을 좋게 평가하지 않았다. 권모술수와 임기응변에 능해야 유능한 유세객이 되었기 때문이다. 세 치 혀를 놀려 속고 속이던 이들은 원한을 사는 일이 많았을 터다. 한창 주가를 올릴 때는 부귀영화를 누렸을 테지만 권세가 영원할 리는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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