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임금들은 천하의 뛰어난 선비들을 무거운 권력에 눌려 엎드리게 하고, 세력 있는 지위만을 제일로 여기므로 얼굴을 돌려 행실을 더럽히면서까지 아첨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섬기게 하고,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친하고 가깝게 하기를 밟니다. 이렇게 된다면 뜻있는 선비들은 바위 굴 속에서 엎드려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충성과 신의를 다하여 대궐 밑으로 들어가는 자가 있겠습니까?"
- 사기(史記) 23-2, 노중련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
추양(鄒陽, BC 206~129)은 제나라 사람으로 양나라 효왕의 문객으로 있었다. 그런데 추양을 시샘하는 자들이 참소를 하여 옥에 갇히게 되고 왕은 죽이려고 했다. 추양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게 될까 봐 옥중에서 왕에게 자신의 심정을 밝히는 장문의 편지를 써서 올렸다. 이 대목은 편지의 마지막 부분이다.
편지 내용은 고금의 충신과 간신, 현명한 군주와 어리석은 군주를 비교하며 왕이라면 올곧은 선비를 알아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충언으로 되어 있다. 의롭고 충성스러운 신하가 비참한 죽음을 당한 여러 예를 들며 그런 잘못을 범하지 말라고 간접적으로 당부한 것이다. 왕조국가에서는 왕이 지혜로우냐 어리석느냐에 따라 나라가 바로서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한다. 민주국가인 지금도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나라의 흥망이 좌우되는데 옛날에는 오죽했겠는가. 다행히 추양의 진심이 통했는지 양 효왕은 추양을 풀어주고 상객으로 삼았다.
사마천은 추양이 말하는 태도가 공손하지는 않았으나 옛 사례를 들면서 쓴 편지에 비장함이 있었고, 강직하며 절개를 굽히지 않은 점을 높게 평가한다. 살고 죽는 것은 하늘에 맡기고 자신의 양심에 따른 소신을 버리지 않은 점에서 추양을 높이 산 것이다. 권력에 아부하고 시세에 편승하는 자들이 설치는 세상에서 바른 말을 할 수 있는 선비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지도자가 아둔하고 독단적이면 다들 바위 굴 속으로 숨어버리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