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사기[24-2]

샌. 2024. 9. 22. 10:24

그만두자꾸나!

나라가 나를 알아주지 않으니

홀로 답답한 마음 누구에게 말하랴!

봉황새는 훨훨 날아 높이 갔네.

스스로 날갯짓하며 멀리 가 버렸네.

깊은 연못 속 신룡(神龍)은

깊숙이 잠겨 스스로 제 몸을 소중히 한다네.

밝은 빛 마다하고 숨어 지낼 뿐

어찌 개미, 거머리, 지렁이와 놀랴?

성인의 신덕(神德)을 소중히 여기고

탁한 세상 멀리하여 스스로 숨네.

준마도 고삐를 매어지게 한다면

어찌 개나 양과 다르다 하랴!

어지러운 세상에서 머뭇거리다 재앙 받은 것,

또한 선생의 허물이로다!

천하를 두루 둘러보고 어진 임금을 도와야 할 터인데

어찌 이 나라만 고집했는가?

봉황새는 천 길 높이 하늘 위로 날다가

덕이 밝게 빛나는 걸 보면 내려오지만,

작은 덕에서 험난한 징조를 보면

날개를 쳐 멀리 날아간다.

저 작은 못이나 도랑이

어찌 배를 삼킬 만한 물고기를 받아들일 수 있으랴?

강과 호수를 가로지르는 큰 물고기도

정녕 땅강아지와 개미에게 제압당하는구나!

 

- 사기(史記) 24-2, 굴원가생열전(屈原賈生列傳)

 

 

가생(賈生)은 낙양 출신으로 굴원보다 약 100년 뒤에 살았다. 어릴 때부터 수재로 소문이 나서 스무 살 남짓할 때 한나라 태중대부(太中大夫)에 올라 나라의 개혁을 이끌었다. 개혁은 기득권의 반발과 미움을 받게 마련이다.

"낙양 출신의 선비는 나이가 어리고 학문이 미숙한데 제멋대로 권력을 휘둘러 모든 일을 어지럽히려고 합니다."

한나라 효문제는 다른 신하들의 말을 듣고는 가생을 장사 지방의 관리로 쫓아냈다. 우울한 심정으로 좌천되어 가는 길에 굴원이 몸을 던져 죽은 상수를 건너게 되었다. 아마 동병상련을 느꼈으리라. 가생은 굴원을 조문하며 시를 지었는데 위의 글은 그중 일부다.

 

뒤에 가생은 효문제의 부름을 받아 다시 조정에 나갔지만 자기 뜻을 펼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효문제는 가생을 자신의 아들인 양나라 회왕의 태부로 삼아 가르치게 했다. 회왕이 사고로 죽자 가생은 태부로 있으면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한 것을 스스로 탄식하여 1년 남짓 슬피 울다가 죽었다. 그의 나이 서른셋이었다. 가슴에 품은 뜻은 컸으나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 슬픔만 끌어안고 죽은 셈이었다. 그나마 굴원보다는 나았지만.

 

이 두 사람의 열전을 쓰며 사마천의 심정 또한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순결한 충심(忠心)이라 한들 세상과 합을 이루지 못하면 비극으로 끝나는 삶이 허다하다. 인간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운명의 장난에 사마천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을지 모른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마음에 깨달은 바 있어 상쾌해지며 스스로 잘못 살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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