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황제(二世皇帝) 2년 7월, 이사에게 오형(五刑)을 갖추어 그 죄를 논하고 함양의 시장 바닥에서 허리를 자르도록 하였다. 이사는 옥에서 나와 함께 잡혀 있던 둘째 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내 너와 함께 다시 한번 누런 개를 끌고 상재 동쪽 문으로 나가 토끼 사냥을 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겠구나."
드디어 아버지와 아들은 소리 내어 울고 삼족이 모두 죽음을 당했다.
망이궁에 있은 지 사흘 만에 조고가 위사(衛士)들에게 거짓 조서를 내려 흰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 궁궐로 향하게 하고, 자신은 한 발 앞서 궁궐로 들어가 이세황제에게 이렇게 말했다.
"산동의 도적떼가 크게 쳐들어왔습니다."
이세황제가 망루에 올라 이것을 바라보고 두려워하니, 조고는 이 틈을 타 이세황제를 위협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했다.
자영은 즉위했지만 조고를 두려워하여 병을 핑계로 정치적인 일을 돌보지 않고 환관 한담 및 그의 아들과 조고를 죽이려고 모의했다. 조고가 황상을 뵙고 문병하려 할 때, 한담에게 조고를 찔러 죽이도록 하고 그의 삼족을 멸망시켰다.
자영이 즉위한 지 석 달 만에 유방의 군대가 무관으로 들어와 함양에 이르렀다. 진나라 신하와 관리는 모두 자영을 배반하고 맞서 싸우지 않았다. 자영은 처자식과 함께 옥새가 달린 끈을 스스로 목에 걸고 지도 부근에서 항복했다. 유방은 자영을 관리에게 넘겼으나 항우가 와서 목을 베었다. 진나라는 마침내 천하를 잃었다.
- 사기(史記) 27, 이사열전(李斯列傳)
진나라가 누대에 걸친 선왕들의 업적에 힘입어 천하를 통일했지만 망하는 데는 15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사열전'은 이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린다. BC 210년, 진시황이 지방 순시중에 갑자기 죽자 조고와 이사가 결탁하여 진시황의 유언장을 위조하여 태자를 제거한 후 만만한 호해를 황제로 삼고 권력을 잡았다. 국정이 어지러워지자 거대 제국이었던 진나라는 순식간에 기울어졌다.
이사(李斯, BC 284~208)는 초나라 사람으로 한비자와 함께 순자의 문하생이었으나, 진나라로 가서 여불위의 사인이 되어 관직에 진출했다. 그는 진시황을 도와 천하를 통일하는 데 기여했고 승상이 되어 제도를 정비하면서 제국의 기틀을 만들었다. 강력한 중앙집권제 및 군현제를 시행하면서 분서갱유 같은 무리한 정책을 밀어붙이기도 했다. 이사는 무명의 유세객에서 일약 권력의 중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진시황이 순행 중에 사망하자 환관 조고(趙高)의 설득에 넘어가 반역에 동참한 것이 결정적 잘못이었다. 태자였던 부소를 자결하게 하고 막내인 호해(胡亥)를 이세황제에 앉히고 권력을 휘둘렀다. 무능한 군주와 간신들이 국정을 농단하며 가혹한 정치를 펼치자 민란이 일어났고 나라는 무너져갔다. 결국 이사는 조고의 음험한 술책에 넘어가 허리가 잘리는 형을 받았고 멸문지화를 당했다.
<사기>에서 '이사열전'은 40페이지에 달할 정도로 길다. 그중에서 이사, 호해, 조고의 비참한 죽음과 진나라의 멸망을 묘사한 부분을 발췌했다. 어리석은 지도자와 사리사욕을 탐하는 간신들이 결탁하면 나라가 순식간에 망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사는 비주류에서 주류로 들어와 끝없는 권력욕과 권모술수로 정상에까지 오르고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끝은 참혹했다. 그나마 이사는 마지막까지 나라를 바로잡고자 애쓴 흔적이 보이기는 한다. 이사, 조고, 호해는 인간의 탐욕과 무능의 끝판왕을 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