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후(呂后)는 고제(高帝)에게 이렇게 말했다.
"팽월은 장사이므로 지금 그를 촉 땅으로 옮겨 보내는 것은 스스로 근심거리를 남겨 두는 일이니, 그를 죽이는 편이 더 낫습니다. 그래서 소첩이 삼가 그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여후는 곧 팽월이 사인을 시켜 팽월이 다시 모반을 꾀하고 있다고 말하게 했다. 정위 왕염개가 그의 일족을 모두 죽이자고 청했다. 고제가 허락하니, 마침내 팽월의 일족은 모두 죽고 그의 나라도 없어졌다.
- 사기(史記) 30, 위표팽월열전(魏豹彭越列傳)
팽월과 위표는 초한전쟁 시기에 한나라 유방/고제를 도와 큰 전공을 세운 장군이다. 팽월은 도둑질을 하며 지내던 놈팽이였으나 진나라가 망해가는 혼란한 시기에 민란에 합류해서 우두머리가 되어 높은 지위까지 오르고 왕이 되었다. 위표도 비슷했다. 둘은 자신의 세력을 믿고 한고조의 명을 무시하다가 모반죄에 몰려 죽임을 당했다.
팽월은 한신과 함께 한나라를 대표하는 장군이다. 그는 양왕(梁王)이 되었으나 고제의 군사 동원 명령을 따르지 않고 모반을 시도하다가 체포되었다. 고제는 그의 전공을 봐서 죽이지는 않고 서민으로 만들어 촉 땅으로 가서 살게 했다. 가는 길에 여후(고제 부인)를 만나서 자신의 무죄를 호소한 게 불운이었다. 여후는 팽월을 달래 낙양으로 데려온 뒤 고제에게 팽월을 죽여야 한다고 말했다. 뒷날의 화근거리를 없애기 위해서였다. 이것만 봐도 여후가 얼마나 냉혹한 인물인지 알 수 있다.
결국 팽월은 꾸며진 반역 행위로 일족과 함께 죽임을 당했다. 한신의 죽음과 비슷한 것 같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지만 사마천은 그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본다. 지나친 권력욕이 파멸로 이끈 것이다. 높은 지위에 오르면 제가 잘 나서 그런 줄 착각하고 또 다른 욕심을 부리게 된다. 귀와 눈을 닫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객관적 판단을 못한다. 사마천은 말한다.
"중간 정도 재능을 가진 자도 이러한 행위를 부끄럽게 여기거늘, 하물며 왕노릇 하던 자야 어떠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