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포의 총애를 받는 희첩이 병들어 의사에게 치료를 받게 되었다. 의사의 집은 중대부 비혁의 집과 문을 마주 보고 있었다. 희첩은 자주 의사의 집에 갔다. 비혁은 자신이 한때 영포의 시중이었으므로 많은 선물을 바치고 그녀를 따라가 의사의 집에서 술을 마시기도 했다. 희첩이 왕을 모시면서 무슨 말 끝에 비혁의 장점을 칭찬하니, 왕이 화가 나서 말했다.
"너는 그를 어디서 알게 되었느냐?"
희첩이 사정을 자세히 말하자 왕은 그와 정을 통하지 않았나 의심하였다. 비혁은 겁이 나서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았다. 왕이 더욱더 화가 나서 비혁을 체포하려 하니, 그는 영포가 반란을 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밀고하려고 역마를 타고 장안으로 떠났다. 영포는 사람을 보내 뒤쫓게 했으나 미치지 못했다. 비혁은 장안에 이르러 글을 올려 영포가 반란을 일으키려는 조짐이 있으니 일이 터지기 전에 목을 베어야 한다고 말했다.
- 사기(史記) 31, 경포열전(黥布列傳)
경포의 본래 이름은 영포(英布)다. 경포는 죄를 지어 얼굴에 먹물을 들이는 형별인 경형(黥刑)을 받아 붙은 이름이다. 도둑질을 일삼다가 무리를 모아 반란을 일으키고 진나라에 대항했다. 처음에는 항우 진영에 가담했으나 뒤에는 세가 강해진 유방을 따랐다. 항우를 물리치는 데 공을 세우고 회남왕에 봉해졌으나 한신과 팽월이 토사구팽 당하는 걸 보고 자신도 같은 처지가 될까 봐 불안해 했다. 이 대목은 그 즈음의 이야기다.
역사를 보면 사소한 일로 둑이 터지는 경우가 많다. 희첩을 둘러싼 영포의 의심과 질투가 비혁으로 하여금 고조 유방에게 밀고하게 만든 단초가 되었다. 여자와 술 때문에 잘못된 길로 가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저 하나 나락으로 떨어지는 거야 상관할 바 아니지만 엉뚱한 사람들이 날벼락을 맞고 나라도 어지러워진다. 2천 년 뒤 동쪽의 작은 나라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결국 영포는 고조의 공격을 받고 죽음을 맞았다. 사마천은 말한다.
"재앙은 사랑하는 여자에게서 싹텄고, 질투가 우환을 낳아 마침내 나라를 멸망하게 만들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