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사기[33]

샌. 2025. 1. 3. 10:02

태사공은 말한다.

"한신과 노관은 본래 덕을 쌓고 착한 일로 처세한 것이 아니라 한순간의 권모술수와 임기응변으로 벼슬을 얻고 간사함으로 공을 이루었다. 한나라가 천하를 막 평정했을 때 만났으므로 땅을 갈라 받고 왕 노릇 하며 고(孤)라고 일컬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나라 안으로는 지나치게 강해지고 커졌다는 의심을 받았고, 나라 밖으로는 만맥을 원조자로 믿고 기댔으므로 시간이 흐를수록 조정과 멀어지고 자신들까지 위태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일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고 지혜가 다하자 흉노로 달아났으니 이 어찌 애처롭지 않으랴!

아. 슬프도다! 대체로 계책의 설익음과 어지러움이 사람에게 성공과 실패로 끼치는 영향은 또한 깊구나!"

 

- 사기(史記) 33, 한신노관열전(韓信盧綰列傳)

 

 

유방은 천하를 통일한 뒤 공이 많은 사람은 왕이나 제후로 봉하여 각 지역을 다스리게 했다. 그중에 유방과 같은 성이 아닌 사람이 일곱 명이 있었는데 유방은 그들을 의심하며 배신을 우려해 하나하나 제거해 나갔다. 한신과 노관도 그런 희생자들 중 하나다(여기 나오는 한신은 우리가 잘 아는 대장군 한신과는 다른 인물로 동명이인이다).

 

특히 노관은 유방과 같은 고향 친구로 어릴 때부터 동고동락한 사이다. 유방이 가장 신임하고 의지하는 사이였고, 천하를 평정한 후에는 노관을 연나라 왕으로 세웠다. 그러나 노관의 세력이 커지자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유방은 번쾌를 시켜 연나라를 치게 했고, 노관은 흉노 땅으로 도망쳤고 거기서 죽었다. 한신도 비슷한 최후를 맞았다. 유방을 도와 공을 세우고 그 권력으로 위세를 누렸으나 천하가 평정된 뒤 절대권력을 공유할 수는 없었다. 하나 같이 반역의 프레임이 씌워져 몰락했다. 

 

사마천이 한신과 노관을 보는 관점은 그가 한나라의 신하였다는 점에서 편파적일 수밖에 없다. '권모술수와 임기응변으로 벼슬을 얻고 간사함으로 공을 이루었다'는 말에서 볼 수 있다. 만약 한신과 노관의 입장이라면 억울하다는 하소연이 나올 법하다. 목숨을 걸고 유방을 보좌했지만 토사구팽 당한 사람이 어디 이 둘만이었겠는가. 인간의 욕망과 시대 상황이 뒤엉킨 흥망부침이 오죽했으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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