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사기[34]

샌. 2025. 1. 9. 18:25

그러고는 마침내 자기 목을 찌르며 빈객에게 자신의 목을 받들고 사신을 따라 말을 달려가 고제에게 아뢰도록 하였다. 고제가 말했다.

"아, 역시 까닭이 있었구나! 한낱 평민에서 몸을 일으켜 세 형제가 번갈아 왕이 되었으니 어찌 어질지 않겠는가!"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는 두 빈객을 도위로 삼고 군졸 2000명을 뽑아 왕의 예를 갖추어 전횡을 장사하였다.

그러나 장례가 끝나자마자, 두 빈객은 무덤 곁에 구덩이를 파고 모두 스스로 목을 메고 거꾸로 처박혀 전횡을 따라 죽었다. 고제는 이 소식을 듣고 몹시 놀라며 전횡의 빈객이 모두 어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였다. 또 그 나머지 500명이 여전히 바다 가운데에 있다고 들었으므로 사신을 시켜 불러오게 했다. 사신이 그곳에 이르러 전횡의 죽음을 알리자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로써 전횡 형제가 선비들의 마음을 얻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사기(史記) 34, 전담열전(田儋列傳)

 

 

초한전쟁 말기에 제나라 왕으로 있었던 전담(田儋)과 전영(田榮), 전횡(田橫)에 대한 이야기다. 제목이 '전담열전'이지만 전담에 대한 내용보다는 그와 사촌형제인 전영과 전횡이 중심 인물로 나온다.

 

유방과 항우가 패권을 다투는 와중에 셋은 양쪽으로부터 두들겨 맞으면서 제나라를 지키려고 애쓴다. 마지막 왕인 전횡은 유방의 천하통일에 기여를 하지만, 한신과의 싸움에서 져서 왕 자리를 뺏겼다. 전횡은 자기의 무리 500명과 함께 섬으로 도망쳤다. 유방은 전횡을 살려둬서는 후일이 두렵다고 여겨 사자를 보내 돌아오라고 명령했다. 돌아오면 작위를 주고 대우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통첩이었다. 전횡은 빈객 두 사람과 함께 역마를 타고 유방이 있는 낙양으로 향했다. 낙양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전횡은 명예를 지키고자 자결을 결심하고 자신의 목을 유방에게 바치라고 빈객에게 당부했다. 위 대목은 전횡과 함께 한 무리의 최후에 관한 내용이다.

 

주군을 따라 빈객만 아니라 섬에 남아 있던 500명이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제나라는 끝났다. 구차하게 목숨을 구하느니 명예롭게 죽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사마천은 전횡의 절개가 고상하여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그 의리를 사모하여 따라 죽었다고 쓰고 있다. 2,200년 전 사람들이라고 어찌 목숨이 아깝지 않았을까. 의(義)를 숭상함이 지금 시대보다 더 극진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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