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가 희하에서 진을 치고 유방을 치려고 하니 유방은 기마병 100여 명을 거느리고 항백을 통해 항우를 만나 함곡관을 막을 일이 없다고 해명했다. 항우는 병사들에게 술자리를 열어 주었다. 범증은 술자리가 한창 무르익자 유방을 죽이기 위해 항장에게 연회석에서 칼춤을 추다가 유방을 찌르라고 명령했지만, 위급한 순간마다 항백이 자기 어깨로 유방을 가려 주었다. 그때 유방과 장량만 군영 안으로 들어와 연회에 참석했고 번쾌는 군영 밖에 있었다. 번쾌는 상황이 긴급하다는 소식을 듣자 곧 바로 철 방패를 들고 군영 문 앞으로 가서 안으로 뛰어들려 했지만 군영의 보초가 번쾌를 가로막았다. 그러나 번쾌는 방패로 그를 밀어젖히고 들어가 장막 아래에 섰다. 항우가 그를 보고 물었다.
"이자는 누군가?"
장량이 대답했다.
"패공의 참승 번쾌입니다."
항우는 말했다.
"장사로구나."
그러고는 큰 술잔에 술을 따라 주고 돼지 어깻죽지 하나를 내려 주었다. 번쾌는 술을 마신 뒤 칼을 뽑아 고기를 잘라서 먹어 치웠다.
- 사기(史記) 35, 번역등관열전
유방의 측근 장수였으며 한나라 개국공신인 번쾌, 역상, 하후영, 관영, 네 사람의 행적을 다룬 편이다. 넷 중에 제일 알려진 인물은 번쾌(樊哙)다. 번쾌는 유방과 같은 고향 사람으로 개 잡는 일을 하던 백정이었다. 넷 모두 비천한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번쾌는 유방을 따라 군사를 일으켜 늘 곁에서 모시며 따라다녔다. 유방의 호위무사 쯤 되는 최측근이었다. 유방과는 동서지간이기도 하다.
BC 206년 유방이 진나라 수도인 함양을 점령하고 함곡관을 막자 늦게 도착한 항우는 분개했다. 전투를 하면 불리하다는 것을 안 유방은 잘못을 빌었고, 항우는 화해의 표시로 연회를 베풀었다. 연회 도중 항우의 장수가 칼춤을 추며 유방을 암살하려 하자 뛰어 들어가 막은 것이 번쾌였다. 항우는 번쾌의 기세에 눌러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번쾌 덕분에 유방은 목숨을 건져 도망칠 수 있었다.
비록 백정 출신이지만 변쾌는 용맹만 아니라 인품도 좋았던 것 같다. 윗사람에 대한 예의가 바르고 아랫사람도 인격적으로 대해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사마천은 후기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그들이 칼을 휘두르고 개를 잡고 비단을 팔 때, 어찌 스스로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 1000리를 가듯이 유방을 만나 한나라 조정에 이름을 날리고 자손들에게까지 은덕을 내리게 될 줄 알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