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382

장모님을 뵙고 오다

장모님을 뵈러 전주에 내려가서 3박4일간 있었다. 아내는 자주 내려가지만 함께 가기는 오랜만이었다. 어쩌다 보니 각자 자신의 어머니를 주로 챙기게 되었다. 아무래도 마음씀이 내 혈족만 하겠는가. 아내가 내 어머니를 대하는 마음이 나와 같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임을 안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일어나는 대로 자연스레 살아가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그렇지 못해서 자주 부딪치며 부부싸움의 원인이 되었다. 이젠 어느 정도는 의무감의 속박에서 벗어났다. 첫째 날은, 내려가면서 대전에 있는 계족산 황톳길에 들렀다. 요사이 맨발 걷기가 유행인데 그 원조가 장동산림욕장 안에 있는 이 황톳길이다. 계족산 황톳길은 2006년에 임도 14.5km에 황토 2만여 톤을 투입하여 조성한 맨발 걷기의 명소다. 임도..

사진속일상 2024.04.16

소금산을 걷다

오랜만에 맑은 하늘이 열려 아내와 같이 소금산으로 나들이를 나갔다. 6년 전 출렁다리를 건넌 적이 있었지만, 그 뒤로 울렁다리와 잔도가 새로 설치되어 걷는 길이 많이 달라졌다. 변한 소금산 그랜드밸리가 궁금했다. 소금산 그랜드밸리의 원조격인 출렁다리. 서 있기가 힘들 정도로 바람이 거셌다. 안쪽으로 더 들어간 곳에 노란색 울렁다리가 새로 생겼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출렁다리 - 잔교 - 울렁다리 순으로 일방통행 진행이다. 울렁다리 쪽에서 본 출렁다리와 삼산천. 삼산천은 조금 더 흘러 섬강과 합류한다. 에스컬레이터 등 전체 공사는 아직 마무리가 되지 않았다. 케이블카를 놓은 작업도 계속되고 있다. 지금은 출렁다리 입구까지 가자면 600개의 계단을 올라야 하지만 케이블카가 완성되면 지상에서 바로 연결된다..

사진속일상 2024.03.08

집 앞에서 만난 올해 첫 봄꽃

시내에 나가 이발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집 앞에서 올해 첫 봄꽃을 만났다. 길 옆 양지바른 곳에 개불알풀꽃 여남은 송이가 피어 있었다. 아직 때가 이른 탓인지 낮은 기온에 잔뜩 지실이 든 모습이었다.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 오늘이다. 잔뜩 찌푸린 채 간간이 가는 비도 뿌리는 날씨다. 강원도에는 많은 눈이 내린다는 예보다. 남부 지방에서는 예년보다 이른 꽃소식이 들리지만 여기는 아직 봄을 체감하기에는 빠르다. 하지만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만 지나면 팝콘 터지듯 봄꽃들이 팡팡 피어날 것이다. 생명이 약동하는 광경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설렌다. 이 세상에 나와서 일흔 번 넘게 봄을 맞고 있다. 젊었을 때와 달리 나이를 먹을수록 봄의 감흥이 애틋한 쪽으로 기운다. 앞으로 몇 번이나 봄을 더 볼 수..

사진속일상 2024.03.05

아내와 경안천을 걷다

아내와 오포 쪽 경안천을 걸었다. 이쪽에는 혹시 고니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금년 2월에는 희한하게도 경안천에서 고니를 볼 수 없다. 무슨 연유로 경안천을 외면하는지 모르지만 아예 마음을 닫은 건 아닌지 걱정이다. 고니도 이제 북쪽으로 이동할 때가 되었다. 연말이 되어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니 서운하기 그지없다. 고니 없는 겨울 경안천은 썰렁했다. 경안천의 터줏대감인 백로와 흰뺨검둥오리는 걷는 동안 그나마 심심찮게 만난다. 항시 볼 수 있으니 그러려니 하지만 너희들도 귀한 존재들이 아니냐. 경제적이나 심리적으로 우리가 평가하는 사물의 가치는 희소성에 의해 결정된다. 베란다에 있는 제라늄은 사시사철 꽃을 피우는 까닭에 이제는 시선을 끌지 못한다. 있는 둥 없는 둥이다. 만약 일 년에 단 하루만 꽃을 피..

사진속일상 2024.02.29

2024 설날

올해 설날은 고향에 내려가서 어머니와 함께 단출하게 보냈다. 도로 정체가 풀린 뒤인 까치 설날 저녁에 내려갔더니 막힘 없이 갈 수 있었다. 차례를 지내지 않으니 명절이랄 것도 없이 간단했다. 성묘 가는 길... 어머니는 과거를 추억하며 많이 서운해 하셨다. 나도 기억하는 그 시절 동네 골목에는 설빔을 차려입은 아이들로 북적였고, 집에는 연신 세배하러 오는 손님이 그치지 않았다. 지금은 설날이 되어도 적막강산이다. 마을에는 아예 아이들이 없다. 새해 인사도 다니지 않는다. 차례를 지내는 풍습도 사라지고 있다. 외지에서 찾아오는 가족 친척도 적다. 그저 제 식구들끼리 어울리다 간다. 우리 동네만 아니라 작금의 보편적인 현상일 것이다. 시대가 변했으니 새 시대에 적응할 수밖에 없잖은가. 어쨌든 한 시대가 저무..

사진속일상 2024.02.12

씨엠립(6) - 반띠에이쓰레이, 반띠에이쌈레

씨엠립 북동쪽에 있는 이 두 유적은 차를 타고 한 시간을 가야 한다. 유적에 어지간한 관심이 없으면 여기까지 찾아가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보석은 눈에 잘 안 띄게 숨겨져 있는 법이다. 반띠에이 쓰레이(Banteay Srei)는 10세기 후반 라젠드바라만 2세 때 세워졌다. 규모가 작지만 정교한 조각이 아기자기하면서 아름다운 여성적인 사원이다. 세 개의 문을 통과해야 성소에 이르는데 가장 바깥 대문에서부터 섬세한 조각이 눈길을 당긴다. 문 상단에 코끼리를 타고 있는 인드라가 보인다. 성소로 향하는 참배로가 100여 미터 정도 뻗어 있다. 양쪽에 남아 있는 기둥으로 보아 원래는 회랑이 있었을 것이다. 참배로 옆에 있는 작은 건물 문 위에는 칼라가 선신을 잡아먹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성소에 들어가는 입..

사진속일상 2024.01.26

씨엠립(5) - 똔레삽

어제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강행군을 한 탓에 오늘 오전은 휴식이다. 늦잠을 푹 자고 아침 식사 전 숙소에서 가까운 공원을 가볍게 산책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어디서나 똑 같다. 거리는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로 활기가 가득하다. 공원에서는 조깅이나 걷기를 하는 현지인의 발걸음이 상쾌하다. 이 모든 풍경을 아침 햇살이 포근하게 감싼다. 물놀이하는 손주를 보며 풀장의 파라솔 아래에서 시간을 보냈다. 숙소 손님은 대부분이 서양인들이다. 가끔 호텔 식당에서 한국인을 만나는데 그때뿐이다. 낮에는 관광을 하느라 바쁠 것이다. 반면에 서양인은 낮에도 풀장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면서 쉬는 사람이 많다. 대체로 나이 많은 사람들이긴 하다. 손에는 늘 책이 들려 있다. 그들한테서는 삶의 여유가 보인다. 반면에 우리는 ..

사진속일상 2024.01.25

씨엠립(4) - 앙코르와트, 쁘레아칸, 네악뽀안, 따솜, 이스트메본, 쁘레룹

앙코르 와트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났다. 툭툭이를 타고 앙코르 와트 입구까지 가서 휴대폰 불빛을 의지해 일출을 보는 장소인 연못으로 향했다. 연못과 주변은 이미 사람들이 빽빽이 모여 있었다. 앙코르 와트 일출은 너무 사람이 많이 모여 있어 분주하고 어수선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경관이 떨어지더라도 사람이 적은 호젓한 곳을 고를 것이다. 사람들에 부대끼며 굳이 연못에 비치는 반영 앞에서 기다릴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일출을 보고 그저께에 이어 다시 앙코르 와트에 입장했다. 일출을 본 사람들은 돌아가기도 하고 우리처럼 안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눈 앞에서는 서양인 단체 관광객이 지나가고 있었다. 서양인은 혼자나 둘씩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패키지로 오는 경우는 드문드문 눈에 띈..

사진속일상 2024.01.24

씨엠립(3)

사흘째는 쉬는 날로 잡았다. 오전에는 씨엠립 시내를 돌아보고, 오후에는 숙소에서 머물며 휴식을 취했다. 손주는 숙소 풀장에서 수영을 하며 놀았다. 씨엠립(Siem Reap)은 캄보디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다. 다른 무엇보다 앙코르 유적지가 곁에 있어 유명해졌다. 관광객이 몰리는 만큼 화려하고 활발한 도시다. 씨엠립은 '씨엠(태국)을 물리친 도시'라는 뜻이다. 시내 관광이라지만 특별히 갈 데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선 숙소 가까이 있는 왕실정원에 들렀다. 왕실정원은 캄보디아 국왕 별장이 있는 도심 속 공원이다. 이 정원은 박쥐가 사는 나무가 있어 유명하다. 박쥐는 나무에 열매처럼 매달려서 쉬고 있었다. 동굴 안의 어두컴컴한 곳이 아니라 햇빛 속에서 살아가는 박쥐가 신기했다. 정원에는 여러 종류의 나무가..

사진속일상 2024.01.23

씨엠립(2) - 앙코르톰, 따프롬, 앙코르와트, 프놈바켕

앙코르 유적 입장권은 필요에 따라 1일권(37$), 3일권(62$), 7일권(72$)을 구입하면 된다. 유적 입장료가 캄보디아인은 무료지만 외국인한테는 비싼 편이다. 우리는 3일권을 끊었다. 열흘 동안에 아무 날이나 사흘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첫날은 앙코르 유적의 중심인 앙코르 톰, 따 프롬, 앙코르 와트, 프놈 바켕을 찾기로 했다. 한국어 가이드와 차량은 미리 예약해 두었다. 첫날만 가이드를 이용하고 나머지 날은 우리끼리 가이드북을 들고 찾아다닐 것이다. 앙코르 톰(Angkor Thom)은 12세기에 인도차이나를 지배하던 앙코르 제국의 수도였다. 당시에 무려 백 만명이 거주했다고 한다. 해자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 남문으로 향한다. 다리 양쪽에는 54개의 신이 뱀 몸통을 잡고 있는 모습이 세워져..

사진속일상 2024.01.22

씨엠립(1)

앙코르 유적을 보기 위해 캄보디아 씨엠립에 6박7일 동안 다녀왔다. 아내와 둘째 딸, 손주와 함께 했다. 이번 해외여행은 코로나로 인해 중단된 지 5년 만의 재개였다. 오랜만에 바다 밖으로 나가는 여행 준비를 하다 보니 기대가 없지 않았지만 귀찮고 부담도 되었다. 여행도 젊을 때 하라는 말이 실감이 되었다. 나이가 드니 아무래도 여행에 대한 설레임이 줄어든 건 확실하다. 앙코르 유적은 오래 전부터 가고 싶던 곳이었다. 그동안 한두 차례 기회가 있었지만 실행하지 못하고 이제야 가족과 함께 가게 되었다. 씨엠립으로 결정된 것은 가족이 내 뜻을 받아주었기 때문이다. 인천공항에서 5시간 30분이 걸려 '씨엠립 앙코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작년 10월에 문을 연 신공항으로 우리는 스카이 앙코르 항공을 이용했다...

사진속일상 2024.01.21

과수원의 노란 손수건

"방에서 꼼짝 않는 사람이 어쩐 일이람." 아내가 반색하며 같이 나가겠다고 했다. 아침 하늘이 좋아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싶다고 했더니 아내가 보인 반응이었다. 뜻하지 않게 연이틀 바깥출입을 하게 되었다. 나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우리 동네에는 복숭아 과수원이 많다. 수확은 오래 전에 끝났지만 복숭아를 쌌던 봉지는 그대로 남아 있다. 멀리서 보면 노란 손수건을 걸어 놓은 것 같다. 교도소에서 출소하는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마음이 담긴 'Going Home'의 사연이 바로 노란 손수건이다. 보기 흉할 수 있는 비닐봉지가 간절한 표징으로 변했다. 사연은 각자 다를 수 있지만. "누굴 기다리는 간절함일까 과수원 가득 걸어놓은 노란 손수건" 동네 걷기에는 여러 코스가 있다. 오늘은 뒷산을 넘어 중대동으로 넘어..

사진속일상 2023.11.21

텃밭 가을걷이와 김장

텃밭의 가을걷이를 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는 예보가 있어 서둘렀다. 조그만 땅뙈기에서 나오는 산물이라 규모가 아담했다. 배추 20 포기, 무 30여 개를 비롯해 고추, 가지, 파, 상추, 호박 등 여러 채소를 거두었다. 고추와 상추는 앞으로도 더 따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되돌아보면 올해만큼 텃밭 덕을 톡톡이 본 해도 없었다. 우리 식탁은 대부분 텃밭에서 나는 남새로 차려졌다. 덕분에 야채값이 너무 비싸졌다는 불평은 우리와는 무관했다. 텃밭의 효용이라면 기르는 재미를 제일로 봤는데, 건강하고 풍성한 먹을거리를 무한 공급해주는 현실적인 이득이 올해는 앞섰다. 땅을 기꺼이 빌려준 이웃분에게 감사한다. 아내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김장을 담그기 시작했다. 예년보다 빠른 셈이다. 나는 말없이 조수 역할에..

사진속일상 2023.11.08

강원도 가을 여행(3) - 십이선녀탕, 박인환문학관

여행 셋째 날, 따뜻한 아침 식사를 지어먹고 느지막이 출발했다. 돌아올 때는 인제를 지나는 국도를 타기로 했다. 미시령터널을 지나니 금방 설악산 십이선녀탕 입구에 도착했다. 깊이 들어갈 생각은 없었으므로 계곡 초입부를 한 시간여 여유롭게 산책했다. 입구에는 단체로 온 관광객으로 붐볐으나 계곡에 드니 한산해졌다. 수수한 갈색 계열의 계곡 단풍이 예뻤다. 바위에 앉아 청량한 물소리를 들으며 쉬었다. 원대리 자작나무숲에 가 볼까 했으나 날이 흐려져서 포기했다. 일기 앱에는 비 예보가 떴다. 대신 시간 여유가 생겼고, 인제읍에 있는 박인환문학관을 차분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문학관 1층에는 시인과 관련된 옛날 거리를 재현해 놓아 특이하면서 흥미로웠다. 시인은 해방 후 20세 때 종로 3가에 '마리서사(茉莉書舍)..

사진속일상 2023.10.29

강원도 가을 여행(2) - 성인대, 중앙시장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밖에 나오면 잠을 설친다. 익숙한 잠자리가 아닌 탓이다. 특히 베개가 문제다. 다음부터는 내 베개를 갖고 다녀야 할지 고민을 해 봐야겠다. 젊었을 때는 아무 데서나 단숨에 잠들었는데 늙어서는 잠이 까다로워졌다. 외부 잠자리의 불편은 여행을 다니는 것이 귀찮아지는 이유 중 하나다. 일찍 잠을 깨서 빈둥거리다가 바깥 산책에 나섰다. 마침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숙소에서는 설악산 울산바위가 정면으로 보였다. 여행 둘째 날은 울산바위를 가까이서 조망할 수 있는 성인대에 오르는 날이다. 이쪽은 외설악이나 내설악만큼 단풍이 화려하지 않고 차분하다. 성인대(聖人臺, 645m)는 화암사(禾巖寺)에서 오른다. 절 안내문에는 '금강산 화암사'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 산줄기는 금강산에 속하는가 보..

사진속일상 2023.10.28

강원도 가을 여행(1) - 발왕산, 낙산해변

아내와 2박3일의 강원도 가을 여행을 다녀왔다. 먼저 용평리조트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발왕산(發王山, 1458m)에 올랐다. 천년주목숲길을 걸어보기 위해서였다. 케이블카 캐빈은 8인승인데 마침 우리가 갔을 때는 대기 없이 바로 탈 수 있어서 둘이서만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다. 내려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케이블카는 3.7km 길이에 20분 정도 걸렸다. 꼭대기에는 스카이워크가 있어 약간의 스릴을 즐기면서 사방 경치를 구경할 수 있었다. 발왕산 높은 곳은 단풍의 끝물이어서 아쉬움이 남았다. 발왕산 정상부에는 약 3km 길이의 천년주목숲길이 있다. 길은 경사가 완만한 나무데크로 되어 있어 노약자도 힘 들이지 않고 걸을 수 있다. 오래된 주목들을 지나게 되어 있어 갖가지 형상의 주목을 만나는 길이다. 여기서 만난..

사진속일상 2023.10.27

하찮은 것이 소중하다

아침에 비가 살짝 뿌리고 지나갔다. 기온이 뚝 떨어졌다. 다행히 곧 하늘이 개고 가을 양광이 온 누리를 환하게 비추었다. 자석에라도 끌리듯 밖으로 나가 뒷산길을 걸었다. 자연이 주는 축복을 몸과 마음으로 감사히 받아들이면서. 8년 전에 일본 야쿠시마 트레킹을 할 때였다. 일본 사람들은 좁은 산길에서 마주 오는 사람을 만나면 길에서 비켜나 멈춰 서서 먼저 가도록 양보를 했다. 수십 명을 만났지만 단 한 사람도 예외가 없었다. 너무 예의가 발라 황공할 정도였다. 하찮을 수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적잖은 문화 충격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깨를 부딪치는 걸 마다하고 서로의 갈 길을 간다. 그때 일이 떠올라 오늘은 나도 산길에서 일본 사람 흉내를 내 보았다. 너댓 사람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반응이 재미있었다. 말로 표..

사진속일상 2023.10.21

전주천의 저녁

가을 저녁의 산책은 스산하다. 보이는 것, 느껴지는 것 모두가 속절없는 세월의 흐름을 보여준다. 이런 멜랑콜리를 즐기려는 편이지만 가슴 한편이 착잡해지는 걸 어찌할 수는 없다. 시간은 인간이 가진 모든 것을 허물고 앗아간다. 누구나 활짝 피어나는 봄이 있었고, 눈부시게 찬란한 여름이 있었다. 그러나 어김없이 가을이 찾아오고 찬바람이 불고 맨발로 동토를 걸어가야 한다. 아무리 고개를 돌려도 외면할 수 없는 잔인한 현실이다. 힘차고 에너지 넘치는 분이었다.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기세가 왕성했다. 하지만 지금은 요양원에서 눈동자가 풀린 채 흐릿한 미소만 짓고 있다. 누구나 오래 살기를 바라지만 장수가 과연 축복인지를 묻게 된다. 어찌 세월만 야속하다 할 수 있으리. 인간이 자연의 길에서 멀어질수록 그만..

사진속일상 2023.10.17

아내와 남한산성을 한 바퀴 돌다

발 통증으로 아내가 걷기를 중단한 지 3년이 넘었다. 그동안 운동 치료를 꾸준히 하면서 지금은 많이 회복되었다. 요사이는 매일 뒷산에서 맨발 걷기를 하고 있다. 아내의 발 상태를 체크할 겸 남한산성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남한산성을 한 바퀴 도는 코스는 중년이었을 때도 만만하지 않았다. 어떤 때는 반 바퀴만 돌고 중단하기도 했다. 둘은 이제 일흔줄에 들어서서 다시 도전해 보는 것이다. 무리가 되면 아내는 중간에 그만두기로 했다. 여기서는 힘들면 아무 데서나 산성마을로 내려갈 수 있다. 장경사에서 출발하여 시계 방향으로 돌았다. 아내는 흙길만 나오면 신발을 벗었다. 아내의 발 통증 이후로 걷기는 늘 혼자였는데 오늘은 함께 걸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동안 노년의 부부가 함께 길을 걷는 모습을 보면서 ..

사진속일상 2023.09.25

아내와 강화도에 다녀오다

가을을 맞아 아내와 바람 쐴 겸 강화도에 다녀왔다. 먼저 들린 곳은 연미정(燕尾亭)이었다. 연미정은 조선 시대 무신이었던 황형(黃衡, 1459~1520)의 무공을 치하하여 중종이 하사한 정자다. 황형은 여기서 살며 말년을 보냈다고 한다. 이곳은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곳에 제비 꼬리 모양으로 돌출한 지형이어서 '연미'라고 부른다. 그 뒤에는 월곶진이 설치되어 관아로 사용하였다. 연미정에서 내려다보면 황형의 집터를 표시하는 비와 월곶진의 문루인 조해루가 보인다. 두 번째는 교동도의 연산군 유배지로 갔다. 이곳은 최근에 화개정원을 만들고 뒷산 꼭대기에는 화개산전망대를 세웠다. 정원에서 전망대까지는 모노레일이 운행한다. 얼마나 변했는지 확인만 하고 싶었던지라 정원만 둘러보고 전망대까지는 올라가지 않았다. 대룡..

사진속일상 2023.09.05

여름 지나가는 뒷산

맨발 걷기 바이러스가 아내마저 감염시켰다. 저녁이면 학교 운동장으로 나가 맨발 걷기를 하더니 오늘은 뒷산으로 진출하겠단다. 뭔가가 몸에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 유행처럼 번져 너나없이 따라 한다. 나는 그저 허허 웃으며 바라볼 뿐이다. 사람들이 쏠리는 방향과는 반대로 움직이는 삐딱이과니까. 맨발 걷기에 적당한 길을 안내해 줄 겸 아내와 함께 뒷산에 들었다. 석 달만이다. 여름이면 산모기 때문에 뒷산에 가질 못한다. 산길도 좋지만 산모기의 성가심을 나는 도저히 감내하지 못한다. 오늘도 어지간하면 되돌아오려고 했는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결국은 정상까지 갔다. 대신 산모기를 쫓던 손수건은 어딘가에 흘려버렸다. 아내 덕분에 생각지도 않은 뒷산에 올라 오랜만에 산기운을 쐬었다. 몸이 나른하면서 가뿐해졌다..

사진속일상 2023.08.27

콩을 까다

텃밭에서 콩 일부를 수확해 왔다. 겉으로 봐서는 시원찮았는데 까 보니 열매는 그런대로 튼실했다. 앞으로 한참 동안 밥에 앉혀 먹을 수 있겠다. 콩을 까는 단순 작업도 재미있었다. 콩깍지를 살짝만 비틀어도 접시에 또로로 떨어지는 콩알들이 귀여웠다. 이 정도라면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거리다. 요사이는 텃밭의 혜택을 담뿍 받고 있다. 아내는 잠에서 깨자마자 댓바람에 텃밭에 나가서 여러가지를 거두어 온다. 상추, 쑥갓, 오이, 고추는 단골 작물이다. 막 뜯어온 야채로 차려진 식탁은 싱싱하다. 시장에서 사 먹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텃밭이 주는 일상의 행복이라 할 수 있다.

사진속일상 2023.07.02

당남리섬을 산책하고 천서리 막국수를 맛보다

아침에 처가 쪽에서 안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심란한 마음을 달래려고 아내와 같이 외출을 했다. 멀리 나가지는 못하고 여주 당남리섬을 한 바퀴 도는 산책을 하고 천서리 막국수로 점심을 했다. 기온이 33℃까지 올라간 땡볕 속이었다. 당남리섬은 청보리는 때가 지나 모두 베어졌고, 수레국화 꽃밭도 대부분 꽃이 지고 씨를 맺고 있었다. 개망초, 금계국, 메밀꽃이 그나마 한창이었다. 멀리 남한강 이포보가 보인다. 볕이 따가워 쉼터에서 자주 쉬어야 했다. 사람들 살아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인간은 운명에 순응하며 살 수밖에 없다는데 공감을 했다. 태어나자마자 얼마 안 돼 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백 년의 수를 누리면서 호의호식하는 악인도 있다. 세상은 선악의 결과가 공평하게 구현되는 곳이 아니다. 천도(天..

사진속일상 2023.06.19

지주를 세우고 잡초를 뽑다

이틀간 넉넉하게 비가 내려 텃밭 작물이 생기를 찾았다. 미루어 온 지주 세우기와 잡초 제거 작업을 했다. 상추, 겨자 등 야채는 두 주 전부터 식탁에 올라 입맛을 돋우고 있다. 고추, 오이 등도 작은 열매가 맺힌다. 아내는 나중을 생각해야 한다면서 처음 나오는 오이는 따내 버린다. 올해 제일 풍성한 건 콩이다. 이것도 일이랍시고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콩 고랑을 멜 때 한 노랫가사가 생각났다. 콩밭 메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움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감히 투덜대거나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지 못하겠다. 허리가 아파도 가능하면 오래 버티려 했다. 옛 아낙네에 비하면 내 동작은 일이 아니라 유희인 것이다. 어쨌든 땀을 흘리고 나니 말끔해진 텃밭만큼 마음도 개운해졌다. 내 몸 조금..

사진속일상 2023.05.29

몰라서 못 먹는다

집에는 냉장고가 세 대 있다. 두 노인이 사는 집 치고 과하지만 전에 자식들과 같이 살 때 쓰던 냉장고가 고장 없이 작동하고 있으니 계속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아내에게 한 대를 없애자고 제안했지만 다 쓸모가 있다고 한다. 부엌 살림살이는 아내 소관이니 어찌할 수가 없다. 세 대의 냉장고는 어디를 열어봐도 빈틈없이 뭔가가 가득 들어 있다. 둘이 사는 살림에 무슨 먹을거리가 이토록 필요한지 모르겠다. 아내조차도 냉장고에 들어 있는 음식을 파악하고 있지 못할 것이다. 뭘 찾자면 이 냉장고 저 냉장고로 왔다갔다 한다. 냉장고만 아니라 옷장도 마찬가지다. 십 분의 일로 줄여도 사는 데는 별 지장이 없을 것 같다. 냉장고 문을 열면서 아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부쩍 늘어난 말이다. "이런 게 있..

참살이의꿈 2023.05.25

장어로 보신하고 공원을 걷다

아내가 몸살(?)을 앓은 뒤끝이라 몸보신을 하러 장어집에 갔다. 큰 것과 중간 것, 두 마리를 시켜서 한껏 먹었다(8만 원). 오랜만의 장어 기름이 속에 부담이 되었는지 저녁에 같이 설사가 나와서 실소를 했다. 이래서 고기도 먹을 줄 아는 사람이 먹는가 보다. 봄에 들면서 식사량이 두 배 이상 늘었다. 지난겨울은 입맛이 없고 조금만 많이 먹어도 위에 부담이 돼서 소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소식 소동(小食 小動)'의 생활이었다. 다행히 봄이 되면서 입맛이 돌아오고 위장도 괜찮아졌다. 덕분에 좀 더 활기차졌다. 식사 후 물빛공원을 찾아서 두 바퀴를 돌았다. 황사가 끼었지만 산책하기에는 무난한 낮이었다. 풍성하진 않아도 아담한 장미 터널이 있고, 물빛버즘도 공작 날개처럼 초록잎을 펼치고 있었다. 이즈음의 나..

사진속일상 2023.05.23

신안 여행(3)

셋째 날, 볼일이 있는 처제네는 아침 식사 후 장모님을 모시고 일찍 집으로 출발했다. 우리는 퍼플섬을 구경하고 올라가기로 했다. 먼저 숙소 가까이 있는 '천사섬 분재공원'에 들렀다. 이 공원은 압해도 송공산 남쪽 기슭 5만 평 부지에 조성되어 있다. 명품 분재와 수목, 조각상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공원의 중심은 애기동백숲이다. 겨울에 애기동백이 필 때 와야 공원의 진가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온실에서는 이 주목나무가 눈길을 끌었다. 물경 1,500살이나 되었다고 한다.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자태가 웅장하다. 그러면서 잎이 달린 가지는 싱싱하고 균형 잡혀 있다. 옆 온실에는 2,000살 된 주목도 있는데 개방을 하지 않아 멀리서 흐릿하게만 봤다. 이어서 퍼플섬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안좌도로 갔다. ..

사진속일상 2023.05.18

신안 여행(2)

아침에 일찍 눈이 떠져서 가만히 숙소 앞 바닷가에 나갔다. 하루도 안 지났지만 벌써 이런 풍경에 익숙해져 있다. 해안가 산책로를 따라 이것저것 기웃거리며 느릿느릿 걸었다. 이곳 신안 압해도 송공리 바다는 김 양식과 낙지잡이가 주업인 것 같다. 갯벌 낙지 맨손 어업이 국가 중요 어업 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 표석이 세워져 있다. 압해도(壓海島)는 신안에서 제일 큰 섬이라는데 무식하게도 신안 여행을 계획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바닷가에는 압해도를 사랑한 노향림 시인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시인은 가난한 유년기를 보낼 때 목포에서 건너다 보이는 압해도가 무한한 위로가 되어 주었다고 한다. 시인은 수십 편의 압해도 연작시를 지었다. 섬진강을 지나 영산강 지나서 가자 친구여 서해 바다 그 푸른 꿈 지나 언제나 그리..

사진속일상 2023.05.18

신안 여행(1)

처제 부부와 함께 장모님을 모시고 떠난 여행이 일이 꼬이는 바람에 계획과 어긋났다. 예정된 일정을 소화하긴 했으나 엉뚱하게 두 팀으로 나누어 따로 다니게 되었다. 언제 어디서든 변수가 생길 수 있고, 상황에 맞게 적응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신안에 들어가는 길에 목포에 들러 해상케이블카를 탔다. 북항승강장에서 탑승하여 유달산을 지나 고하도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코스다. 목포 해상케이블카는 2019년에 개통되었고 길이는 3.2km다. 케이블카에서 보니 고하도 둘레로 해상데크 길이 잘 만들어져 있었다. 섬 가운데 있는 것은 전망대인 것 같다. 다음에 시간 여유를 가지고 목포에 온다면 이 길을 걸어보고 싶다. 유달산승강장에서 내리면 유달산 정상에도 다녀올 수 있다. 30분 정도 일등봉까지 오가는 산길을..

사진속일상 2023.05.18

어버이날에 어머니를 찾아뵙다

어버이날에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찾아뵈었다. 몇 해 전만 해도 어버이날이면 동네에서 노인들에게 점심을 대접했는데 이젠 그마저도 없어졌다.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봉사를 할 중년층이 사라진 탓일 게다. 이미 마을 주민의 9할 이상이 70대가 되어 있다. 저녁 식사를 하고 해 질 즈음에 마을 주변 산책에 나섰다. 매직 아워의 전원 풍경이 평화로웠다. 다음날은 밭에 나가 잠시나마 어머니 일손을 도와 드렸다. 평생을 농부로 살아오신 어머니는 밭일이 아니면 생의 존재 의미를 찾지 못하시는 것 같다. 삶을 지배하는 관성의 무서움이다. 힘들다 하면서도 밭은 어머니가 그림을 그리는 캔버스다. 나도 꼼꼼한 편이지만 어머니에게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여러 해 전부터 마지막일지 모른다고 하면서도 올해 역시 깨 농사를 시작했다...

사진속일상 2023.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