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엠립 북동쪽에 있는 이 두 유적은 차를 타고 한 시간을 가야 한다. 유적에 어지간한 관심이 없으면 여기까지 찾아가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보석은 눈에 잘 안 띄게 숨겨져 있는 법이다.
반띠에이 쓰레이(Banteay Srei)는 10세기 후반 라젠드바라만 2세 때 세워졌다. 규모가 작지만 정교한 조각이 아기자기하면서 아름다운 여성적인 사원이다.
세 개의 문을 통과해야 성소에 이르는데 가장 바깥 대문에서부터 섬세한 조각이 눈길을 당긴다. 문 상단에 코끼리를 타고 있는 인드라가 보인다.
성소로 향하는 참배로가 100여 미터 정도 뻗어 있다. 양쪽에 남아 있는 기둥으로 보아 원래는 회랑이 있었을 것이다.
참배로 옆에 있는 작은 건물 문 위에는 칼라가 선신을 잡아먹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성소에 들어가는 입구와 문 위에 새겨진 조각은 앙코르 유적 전체를 통틀어 가장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이라고 한다. 문외한이 봐도 균형 잡힌 자태가 일품이다.
출입문의 앞면 박공에는 칼라 위에 앉아 있는 비수뉴, 뒷면에는 행운의 여신인 락슈미가 코끼리의 축복을 받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중앙 성소는 출입이 되지 않고 밖의 관람로를 따라 한 바퀴를 돌며 봐야 한다. 앞으로는 다른 유적들도 이런 통제가 점점 많아질 것 같다. 유적 보호를 위해서는 당연한 조치라고 생각한다.
어느 방향에서 봐도 아담하고 예쁜 반띠에이 쓰레이다.
사원을 둘러싼 숲에서는 청아한 새소리가 배경음이 되어 울렸다. 잠시 담 그늘에 기대 앉아 지긋이 눈을 감고 귀의 호사를 누렸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반띠에이 쓰레이는 앙코르 여행의 마지막 날에 받은 귀한 선물이었다.
반띠에이 쌈레(Banteay Samre)는 12세기 중엽에 만들어졌으니 반띠에이 쓰레이와는 이름만 비슷할 뿐 연관이 없다. 분위기도 전혀 다르다. 반띠에이 쓰레이가 여성적이라면 반띠에이 쌈레는 남성적이다. 두 유적을 보며 다보탑과 석가탑의 대비가 연상되었다.
중앙 성소탑은 앙코르 와트의 중앙탑과 닮았다.
반띠에이 쌈레는 이번에 찾아본 유적지 중 가장 사람이 적은 곳이었다. 유적 자체는 인상적인 점이 없었지만 숲으로 둘러싸인 한적한 분위기가 좋았다.
두 유적을 보고 씨엠 립으로 돌아오는 길에 벌룬을 타 보았다. 고정된 줄에 의지해 오르내리는 벌룬은 앙코르 와트와 씨엠 립을 가장 높은 곳에서 볼 수 있는 기구다. 그날의 풍속에 따라 올라가는 높이가 다르다고 한다.
120m 높이에서 바라본 앙코르 와트.
캄보디아 전원 풍경 뒤로 멀리 씨엠 립 시내가 보였다.
저녁에는 씨엠 립 시내를 산책했다.
한국 음식점 '김치', 이곳에서 두 끼를 해결했다.
어느 가게 앞에는 귀여운 고양이들이 나와 놀고 있었다. 고양이의 눈빛이 앙코르 유적을 닮은 듯 쓸쓸해 보였다.
다음날 새벽에 씨엠 립을 출발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내내 곯아떨어졌다.
씨엠 립에서 엿새를 있었지만 그마저도 앙코르 유적을 보는 데는 부족했다. 널널하게 일정을 잡은 측면이 있어 압축했다면 사흘이면 되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중요 유적에는 눈도장을 찍었지만 1/3 정도는 찾지 못했다. '앙코르에 안 가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간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다. 누구나 앙코르 유적을 찾으면 그 매력에 빠지고 만다는 뜻이다. 나 역시 다시 한 번 더 앙코르를 찾을 날이 오기를 소원한다.
일단 맛을 봤으니 이젠 혼자서라도 별 염려 없이 다녀올 수 있을 것 같다. 사는 게 쓸쓸해질 때 홀연 앙코르로 떠나면 어떨까. 인적 드문 유적의 폐허에 앉아 해 지는 풍경 속에 고요히 잠기고 싶다. 가 보고 싶은 곳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음이 행복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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