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씨엠립(4) - 앙코르와트, 쁘레아칸, 네악뽀안, 따솜, 이스트메본, 쁘레룹

샌. 2024. 1. 24. 11:17

앙코르 와트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났다. 툭툭이를 타고 앙코르 와트 입구까지 가서 휴대폰 불빛을 의지해 일출을 보는 장소인 연못으로 향했다. 연못과 주변은 이미 사람들이 빽빽이 모여 있었다.

 

앙코르 와트 일출은 너무 사람이 많이 모여 있어 분주하고 어수선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경관이 떨어지더라도 사람이 적은 호젓한 곳을 고를 것이다. 사람들에 부대끼며 굳이 연못에 비치는 반영 앞에서 기다릴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일출을 보고 그저께에 이어 다시 앙코르 와트에 입장했다. 일출을 본 사람들은 돌아가기도 하고 우리처럼 안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눈 앞에서는 서양인 단체 관광객이 지나가고 있었다. 서양인은 혼자나 둘씩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패키지로 오는 경우는 드문드문 눈에 띈다.

 

앙코르 유적지를 찾는 사람은 서양인이 제일 많다. 전체 관광객의 2/3 정도가 서양인인 것 같다. 그중에서도 프랑스 사람이 가장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캄보디아를 식민 통치했던 프랑스가 일찍부터 앙코르 유적에 관심이 많았고, 멋진 유물은 프랑스로 반출하기도 했다. 동양인 중에서는 일본인과 한국인이 많았고, 중국인은 의외로 적었다. 코로나 이후로 중국인 관광객은 아직 회복 되지 않은 모양이다. 시끄러운 중국인이 적어 다행이었다.

 

 

다시 3층까지 올라갔다. 중앙탑이 아침 햇살을 받아 붉게 물들었다. 

 

 

아침 햇빛이 비치는 앙코르 와트가 한낮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신비하게 느껴졌다. 앙코르 유적을 관람할 시간대가 언제인지를 확실히 알겠다. 아침과 저녁이 유적의 분위기에 젖기로는 제일 좋은 시간대다. 한낮은 더워서 쉽게 지칠 뿐 아니라 유적의 느낌이 살지 않는다. 만약 다시 앙코르에 다시 오게 된다면 어떻게 일정을 짜야 할 지 대충 머리에 그려진다.

 

 

앙코르 와트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참배로 위에서 딸과 손주가 다정하게 손을 맞잡았다.

 

 

 

오늘부터는 가이드 없이 우리끼리 유적을 돌아본다. 뚝뚝이는 하루를 대절했다. 먼저 찾은 곳은 쁘레아 칸 사원이었다.

 

쁘레아 칸(Preah Khan) 역시 12세기 후반에 자야브라만 7세가 세웠다. 쁘레아 칸이란 캄보디아어로 '신성한 칼'이란 뜻이다. 자야바르만 7세가 참파와 전쟁을 벌일 당시 이 사원을 북쪽의 작전사령부로 사용했고, 전쟁에서 이긴 뒤에는 증축하여 아버지를 위한 사원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는 사원의 서쪽 출입구로 들어간다. 참배로에 늘어선 불상은 머리가 모두 잘려나갔다. 불교 탄압 시기에 벌어진 일이다. 참배로를 지나면 다리가 나오고 다리 위에는 '우유 바다 휘젓기' 조각이 있다.

 

 

손주가 무엇을 살피는가 했더니 돌 구멍 안에서 거미를 발견한 모양이다. 손주는 이제 10살인데 이국의 황량한 유적에 관심을 보일 나이는 아니다.

 

 

사원 안에는 압사라가 여럿 조각된 '압사라의 방'이 있다. 한 켠에 압사라를 경배하는 듯한 제단도 보인다.

 

 

앙코르 사원과는 다른 그리스 신전을 닮은 건물이 서 있다. 설마 이 시기에 유럽의 영향을 받았던 것은 아니겠지.

 

 

우리는 동쪽 문까지 둘러본 다음 북문으로 나왔다. 쁘레아 칸처럼 이름이 덜 알려진 유적은 한적해서 좋았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수상사원으로 알려진 네악 뽀안(Neak Pean)이다. 네악 뽀안은 사원이라기보다는 병을 치료하는 목적의 병원 역할을 한 곳이다. 구조는 중앙탑과 탑을 둘러싼 네 개의 연못으로 되어 있다. 물은 중앙 연못에서 네 연못으로 흘러가는데 이 물에 몸을 씻으면 병이 낫는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실제로 연못 한 쪽에서는 두 젊은 캄보디아인이 연못에 손을 담그며 경건하게 기도하고 있었다.

 

 

 

다음은 따 솜(Ta Som) 사원이다. 규모가 아담하면서 귀여운 느낌마저 든다. 복원이 덜 된 상태여서 오히려 더 분위기 있는 사원이다. 

 

 

자야바르만 7세 특유의 사면상도 있다.

 

 

따 솜에서는 동쪽 출입구 및 고푸라를 꼭 봐야할 것이다. 벵골보리수 뿌리가 출입구를 휘감았는데 아쉽게도 나무 줄기를 잘라버렸다. 유적 보호를 위해서였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나무가 살아있는 게 훨씬 더 운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다음은 이스트 메본(East Mebon)이다. 이스트 메본은 저수지 안에 건설된 수상사원으로 배를 타고 왕래했으나 지금은 물이 말라 직접 연결되었다. 수상사원이라 기단을 높게 쌓은 것이 특징이다.

 

 

더운 날씨에 돌아다니느라 이때쯤 손주는 완전히 지쳤다. 코끼리가 있어도 별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따뜻한 노을의 사원이라는 쁘레 룹(Pre Rup)이다. 앙코르 유적 중에서 프놈 바켕에 이어 두 번째로 꼽히는 일몰 포인트다. 이곳에서 노을을 보려 했으나 나무가 시야를 가려서 서쪽 조망이 별로였다. 또한 건기의 캄보디아 하늘은 구름 없이 밋밋하다. 노을 자체로 치면 다양한 모양의 구름이 만드는 우리나라 노을이 상급이다. 폐허의 유적과 석양이 만드는 분위기를 맛보려고 이곳의 노을을 언급하는 것이겠지만.

 

 

천 년 유적의 돌틈에서도 꽃이 피고 있었다. 

 

 

툭툭이를 타며 바람을 쑀더니 눈에 이상이 나타났다. 눈에 충혈이 생기고 눈물이 샘솟듯 흘러내렸다. 주로 찬바람을 쐬면 나타나는 증상이다. 지난달에 안과에 갔더니 눈물관이 막힌 탓이라 했다. 여기는 더운 날씨라 괜찮을 줄 알고 방심했다. 더구나 사용하던 안약도 갖고 오지 않았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남은 일정을 논의하다가 딸과 마찰을 빚었다. 딸은 자신이 애쓰는 걸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운해 했다. 23년 전에 칠순을 맞은 어머니를 모시고 백두산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여러 날 동안 한 방을 쓰고 같이 지내면서 드러내지는 못했지만 많이 피곤했다. 딸을 보며 문득 그때 일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어머니 나름대로 애로사항이 있을 것이라는 걸 당시에는 알아채지 못했다. 위치가 역전되고 보니 알겠다. 자식과는 가능하면 같이 여행하지 않을 것! 속으로만 한 다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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