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서 꼼짝 않는 사람이 어쩐 일이람." 아내가 반색하며 같이 나가겠다고 했다. 아침 하늘이 좋아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싶다고 했더니 아내가 보인 반응이었다. 뜻하지 않게 연이틀 바깥출입을 하게 되었다. 나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우리 동네에는 복숭아 과수원이 많다. 수확은 오래 전에 끝났지만 복숭아를 쌌던 봉지는 그대로 남아 있다. 멀리서 보면 노란 손수건을 걸어 놓은 것 같다. 교도소에서 출소하는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마음이 담긴 'Going Home'의 사연이 바로 노란 손수건이다. 보기 흉할 수 있는 비닐봉지가 간절한 표징으로 변했다. 사연은 각자 다를 수 있지만.
"누굴 기다리는 간절함일까
과수원 가득 걸어놓은
노란 손수건"
동네 걷기에는 여러 코스가 있다. 오늘은 뒷산을 넘어 중대동으로 넘어가는 길을 택했다. 늦가을의 산길이 폭신했다.
물빛공원을 돌아서,
중대천 길을 따라 걸었다. 벤치에 앉아 쉴 때 자글거리는 가을 햇살이 봄볕처럼 따스했다. 중대천의 왜가리 한 마리,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길에서는 고양이를 자주 만났다. 고양이들은 하나 같이 사람을 두려워했다. 이 검은 고양이도 우리를 보자 부리나케 도망 가 풀섶에서 웅크린 자세로 노려봤다. 인간의 동네에서 생존해 나가는 동물들은 애처롭다. 인간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심이 극도로 발달되어 있다. 야생과 인간계 사이의 '경계(境界)'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에게 '경계(警戒)'는 생존의 필수 조건인 것 같다.
어제는 13,000보, 오늘은 15,000보가 찍혔다. 몸이 개운해지고 정신도 상쾌해졌다. 걸으면 좋다는 걸 이런 때만 반짝 실감한다. 그렇다고 맨날 바깥 걷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아무래도 방콕 체질이다. 억지로라도 매일 걸으면서 활력을 찾으라고 충고하는 친구도 있다. 비실거리고 우울해 보이는 내가 가엾게 보였나 보다. 온종일 집안에만 있으면 몸이 근질거려 어찌 견디냐는 것이다. "제 생긴 대로 살자."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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