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잎 떨군 자작나무

샌. 2023. 11. 20. 10:40

자주 다니는 나지막한 뒷산에서 길을 잃었다. 자작나무를 보러 가는 길이었는데 귀신에 홀리듯 진입로를 착각한 것이었다. 눈에 익은 데서도 이럴진대 큰 산이라면 어떠하겠는가. 늙어 총기가 흐려진다는 걸 산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뒷산에는 자작나무 군락지가 있다. 주 등산로에서 벗어난 3부 능선쯤에서 자란다. 수령이 오래 되지 않아서 감탄사가 나올 정도는 아니지만 가까이서 자작나무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맙다. 나는 자작나무를 좋아해서 밤골 생활을 할 때는 집 뒤에 자작나무를 10그루 정도 열을 맞춰 심었다. 오류선생(五柳先生) 도연명의 흉내를 내 본 것이다.

 

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챘을 때는 이미 되돌아갈 수 없게 많이 내려와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아랫마을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제대로 된 길로 올라가 자작나무를 만났다. 뒷산의 자작나무는 노랗게 물들었을 때 찾아가려 했으나 아차, 하는 사이에 때를 놓쳤다. 자작나무는 이미 잎을 떨구고 나신이 되어 있었다.

 

 

자작나무 풍경은 단풍 든 가을과 눈 내린 겨울이 가장 낫다고 생각한다. 20여 년 전 백두산 가는 길에서 만난 자작나무 숲이 잊히지 않는다. 제 땅에서 자란 자작나무는 역시 품새가 달랐다. 여기는 자작나무가 자랄 환경으로 미흡한 것 같다. 앞으로 온난화가 진행될수록 자작나무는 점점 북쪽으로 쫓겨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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