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늦가을의 서울식물원

샌. 2023. 11. 18. 10:25

모임이 있는 마곡까지 가는 길은 멀었다. 전철 정거장까지 한 시간가량 걸은 것을 포함하면 총 세 시간이 걸렸다. 전철은 경강선, 신분당선, 9호선을 타야 했다. 그렇게 지하에 있는 동안 살짝 눈이 뿌렸던 모양이다. 첫눈을 맞았다고 들뜬 사람이 있었다. 지상으로 나왔을 때 눈은 다 녹았고, 보도는 물기만 젖어 있었다. 이걸 첫눈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환담을 나누고, 그리고 늦가을의 서울식물원을 돌아보았다. 개원한 지 4년이 되었지만 처음 와 본 식물원이었다. 식물원이기보다는 잘 꾸며진 도시공원이었고, 주변의 현대식 건물들과 조화로운 풍경을 만들었다. 

 

 

식물원의 중심 시설은 대형 온실이다. 이곳에서는 지중해와 열대 지방에 위치한 세계 12개 도시 식물과 식물 문화를 관람할 수 있다. 그 외에 보타닉홀, 강의실, 도서관, 연구소, 식당, 카페 등의 시설이 함께 있다.

 

 

모임이 끝나고 해프닝이 있었다. 마곡까지 나간 길에 근처에 사는 친구와 만나기로 전날 약속을 했다. 모임이 끝나는대로 전화 연락을 하겠다고, 네 시경이 될 거라고 말했는데, 여러 차례 전화를 넣어도 도무지 받지 않는 것이었다. 응답을 기다리느라 식물원을 한 시간여 배회했지만 종내 무소식이었다. 2년 가까이 보지 못해서 서로가 반가워하며 만남을 기대했던 터였는데 어이가 없었다.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그때서야 전화 온 걸 확인했다면서 어디냐고 묻는 것이었다. 내가 네 시쯤에 전화하겠다는 말도 잊고 있었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굳이 탓한다면 세월밖에 더 있겠는가. 늙으면 자기 세계에 갇혀 남의 말은 귀담아듣지 않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서로 지껄이지만 남 얘기는 귓전으로 흘린다.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 공기가 더욱 차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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