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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산. 바. 라. 기.
쓰레기를 버리러 나간 길에 단지 화단에 핀 꽃들을 살폈다. 다른 해와 달리 자주괴불주머니가 많아졌고, 봄맞이꽃은 피는 장소가 옆으로 옮겼다. 식물도 자라는 장소라든가 생태가 해마다 변하고 있다. 제일 반가운 것은 봄맞이꽃이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라는 말처럼 꽃 중심에 있는 노란 동그라미가 무척 귀엽다. 얘들도 사람처럼 모여 살기를 좋아한다. 올해 만든 동네는 꽤 크다. ▽ 자주괴불주머니 ▽ 개불알풀꽃은 두 달이 되도록 피어 있다. ▽ 애기똥풀 ▽ 꽃마리 ▽ 고들빼기 ▽ 제비꽃 ▽ 흰토끼풀 ▽ 꽃사과꽃 ▽ 철쭉 ▽ 현관에 들어설 때마다 몽롱하게 취하게 만드는 라일락 멀리 나가지 않으면서 슬리퍼 차림으로도 여러 꽃들을 만난다. 이름난 장소를 찾아가는 기쁨과 별반 다르지 않다. 더 늙어 바깥출입이 ..
동네 벚꽃이 지고 있다. 벚나무 아래는 눈이 내린 듯 하얀 꽃잎으로 덮였다. 사람이 다닌 자리로 바닥이 드러난 길이 생겼다. 바람이 불 때마다 하롱하롱 벚꽃이 떨어진다.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는 아이들 몇이 벚나무 밑에서 놀고 있다. 한 아이가 말한다. "떨어지는 벚꽃을 잡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대." 그러면서 나무줄기를 발로 차니 응답하듯 하얀 벚꽃이 쏟아진다. 떠나가는 벚꽃은 작은 진동에도 이리 가볍게 낙하를 한다. 벚꽃은 질때조차 아름다워 더욱 안타까운지 모른다. 애처롭기도 하다. 미련 없이 제 몸을 떨구는 모습이 숙연하다. 생의 무상이랄까, 지는 벚꽃이 주는 감상이 남다르다. 벚꽃 길을 조심스레 걷는다. 한 줄기 바람이 지나가자 분분한 벚꽃, 오늘이 그런 날이다. 헤어지자섬세한 손길을 흔들며하롱하롱 ..
석 달간 참여했던 캘리그래피 수업이 오늘로 끝났다. 총 10차시였는데 두 번을 결석했으니 여덟 번 출석할 셈이다. 열성적으로 가르쳐주신 선생님 덕분에 캘리그래피가 무엇인지 맛을 볼 수는 있게 되었다. 무슨 일이든 상당한 수준에 오르기 위해서는 꾸준한 연습과 노력이 필요한데 캘리그래피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만만히 봤는데 할수록 두터운 벽을 느낀다. 글씨와 조형미에 대한 예술적 감각도 요구되는 것 같다. 마지막 시간은 각자 쓰고 싶은 문장을 가지고 자신의 작품을 만들었다. 내가 쓴 문구는 '봄, 보고 싶어요 다 당신입니다'였다. 칭찬을 들어 어깨가 으쓱해졌다. 김용택 시인의 시 '다 당신입니다'에서 고른 글이다. 개나리꽃이 피면 개나리꽃 피는 대로살구꽃이 피면은 살구꽃이 피는 대로비 오면 비 오는 대로그..
이웃 동네에 '매화마을'이 있다. 여기는 아파트 단지명을 꽃과 나무 이름으로 지었다. '매화마을' 외에 '장미마을' '솔마을'도 있다. 이름값을 하려는지 '매화마을'에는 매화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다. 그리고 지금 매화꽃이 한창이다. 올봄 매화는 이 마을에서 즐긴다. 홍매 향기가 엄청 진하다. 목련도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목련 아래 동백도 보인다. 산수유. 마을 옆을 지나는 개나리 길. 초목들은 아른아른 봄색으로 물들고 있다. 봄은 온갖 꽃들이 연주하는 합창 교향악이다. 우리는 시각으로 꽃을 보지만 청각으로 꽃을 듣는 생물체를 상상해 본다. 어쩌면 그쪽이 더 현란한 봄을 느낄지 모른다. 생명의 환희송이 온 누리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김영랑 시인이 노래한 바로 그 봄 하늘이 펼쳐졌다. 길을 걸으며 수도 없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직도 이런 하늘이 남아 있다는 게 고마웠다. 바야흐로 도시의 봄은 산수유꽃과 함께 시작한다. 노란 산수유꽃과 겹쳐 바라보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그리 고울 수 없었다.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시인의 노래를 따라 하며 나도 시인의 마음이 되어보는 햇살 따스한 봄길이었다.
겨울용 패딩이 무겁다. 한겨울에는 추위를 막아주지 못해 안 입던 옷인데 이마저도 답답하다. 봄이 세 발자국은 가까이 다가선 듯하다. 가벼운 배낭 하나 메고 집을 나섰다. 중앙공원에 들어섰더니 인공폭포를 시험 가동하고 있다. 중앙공원은 아직 정식 개장을 안 했다. 폭포에서 떨어진 물은 작은 계류를 따라 아래로 흘러내려간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봄을 환영하는 인사로 들린다. 공원 전망대에서 벽산아파트를 보며 문득 시 하나를 떠올리고 웅얼거려 본다. 問余何事棲碧山笑而不答心自閑桃花流水杳然去別有天地非人間 어찌하여 '벽산'에 사느냐고 나에게 묻길래웃으며 대답하지 않아도 마음 절로 한가롭네물 따라 복사꽃잎들 아득히 흘러가는데이곳이야말로 딴 세상이지 속세가 아니라오 저 벽산에 사는 사람들은 이백의 '산중문답(山中..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시의 가슴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 김영랑 두 달 전 강진에 갔을 때 김영랑 생가를 찾았었다. 잘 정리된 생가 안팎에는 시인이 남긴 시 여러 편이 게시되어 있었는데 집 담 앞에는 이 시가 적힌 시비가 있었다.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가치돌 아래 우슴 짓는 샘물가치내 마음 고요리 고흔 봄길 우에오날 하루 하날을 우러르고 싶다새악시 볼에 떠오는 붓그럼가치詩의 가슴을 살프시 젓는 물결가치보드레한 에매랄드 얄게 흐르는실비단 하날을 보라보고 십다 1930년에 발표된 글 그대로가 더 정감있게 느..
낮 기온이 15도까지 올라가며 따스해졌다. 봄의 척후병이 가까이에 접근해서 어딘가에 잠복해 있는 것 같다. 겨울 동안 얇아서 입지 않은 패딩이 무겁게 느껴진다. 도서관에 다녀오면서 들러본 동네 공원의 양지바른 곳에 돋아난 초록 잎이 반짝인다. 봄이 다가오고 있다고 수런거리는 초목들의 속삭임이 들리는 것 같다. 공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아이들도 반소매 차림이다. 계절 변화는 이렇듯 양자 도약하듯 일어난다. 아직 공원 산책로를 다니는 사람은 드문드문하다. 뭐든 깨어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니까. 사람보다는 식물이 기온 변화를 훨씬 예민하게 느낄 것이 분명하다.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나무 줄기 안이나 흙 속에서는 새 움이 싹틀 준비를 마쳤을지 모른다. 새싹 역시 어느 순간 여리며 귀여운 모습을 드러..
봄날씨에 끌려서 뒷산을 한 바퀴 돌았다. 간식 담긴 배낭을 메고 스틱까지 준비해서 등산 흉내를 낸 산길 걷기였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따사로운 봄 햇살이 환한 날이었다. 신록이 익어가는 산은 초록 세상이었다. 초록은 생명의 색깔이다. 숲은 아기자기한 생명의 약동으로 빛나고 있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내 안의 생명 에너지가 공명을 일으켜서 엔돌핀이 샘솟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런 계절에 산길을 걸으면 존재 자체의 기쁨을 만끽하게 된다. 자작나무 숲도 초록 새 잎으로 단장하고 있었다. 쉼터에서 바라본 풍경이 해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새 아파트가 여럿 들어섰고 공사중인 곳도 있다. 가장 기대되는 것은 앞산에 만들어지고 있는 중앙공원이다. 걷기 좋은 산책로와 다양한 편의 시설을 내년에는 만날 수 있..
봄기운에 끌려 드라이브를 나갔다. 목적지는 팔당호를 끼고 있는 다산생태공원이었다. 이 공원 주변에는 내가 아끼는 산책로가 있다. 잔잔한 호수가 주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길이다. 돌아오는 길에는 동네 공원에 들렀다. 벚꽃 만개하기 직전이다. 예쁜 사진을 남기고자 갖가지 소품을 들고 온 아가씨들의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수년만에 장롱에서 D750을 꺼내 들고나갔다. 스마트폰과 비교한 사진 결과물이 궁금했다.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 굳이 무거운 디카를 들고 다녀야 할 의미가 없어진 것 같다. 그만큼 스마트폰 사진이 좋아졌다. 물론 작품이 아니라 생활 사진을 찍는 사람에 한하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