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 바. 라. 기.
이른 봄을 걷다 본문
겨울용 패딩이 무겁다. 한겨울에는 추위를 막아주지 못해 안 입던 옷인데 이마저도 답답하다. 봄이 세 발자국은 가까이 다가선 듯하다. 가벼운 배낭 하나 메고 집을 나섰다.
중앙공원에 들어섰더니 인공폭포를 시험 가동하고 있다. 중앙공원은 아직 정식 개장을 안 했다. 폭포에서 떨어진 물은 작은 계류를 따라 아래로 흘러내려간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봄을 환영하는 인사로 들린다.

공원 전망대에서 벽산아파트를 보며 문득 시 하나를 떠올리고 웅얼거려 본다.
問余何事棲碧山
笑而不答心自閑
桃花流水杳然去
別有天地非人間
어찌하여 '벽산'에 사느냐고 나에게 묻길래
웃으며 대답하지 않아도 마음 절로 한가롭네
물 따라 복사꽃잎들 아득히 흘러가는데
이곳이야말로 딴 세상이지 속세가 아니라오
저 벽산에 사는 사람들은 이백의 '산중문답(山中問答)'을 알고 있을까. 이백이 20대 후반에 세상에 좌절하며 들어간 벽산이건만 시에는 이백의 자부심이 철철 흘러넘친다. 1300년 전 벽산에 살았던 이백의 기개와 여유를 생각한다.


산수유의 노오란 꽃망울이 수줍어하며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땅에서는 개불알풀과 냉이꽃도 보인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봄꽃의 향연이 찬란하게 펼쳐질 때가.

이번에는 장신대 구내로 들어가 보았다. 캠퍼스는 조용했다.
'밀알 영성'이라는 표어가 길을 따라 게시되어 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 요12:24


봄 오시는 공원길도 고즈넉했다. 남향의 벤치에 앉아 햇빛바라기를 했다. 그래도 봄은 찾아오고 세상은 아름다워라.

겨울을 견딘 나무도 대지 속 물을 빨아올리며 봄 맞을 채비를 하고 있으리라. 주변은 온통 생명들의 수선거리는 소리로 가득하다. 물까치들의 활발한 날갯짓과 지저귐이 동네 공원을 흔드는 이른 봄의 한낮이다.


집에 돌아오니 13,000보가 찍혔다. 3월 들면서 걸음수가 부쩍 늘었다. '삼성 헬스' 앱 통계를 보니 하루 평균 6천 보 정도 걸었다. 상위 30%라고 한다. 그래, 이런 정도의 걸음이면 됐다. (여동생은 지난 3.1절 기념 만세걷기 대회에서 무박2일 동안 120km를 걸었다. 잠도 안 자고 연속 30시간을 걸은 것이다. 무리하지 말라고 말렸지만 끝내 완주했다. 60대 여동생을 억척으로 걷게 만드는 추동력이 어디서 나오고 있는지 나는 어럼풋이 아프게 짐작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