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병 (97)
먼. 산. 바. 라. 기.
이 책을 쓴 김도미 작가는 30대 중반에 급성골수성백혈병에 걸렸다. 항암치료를 거쳐 조혈모세포이식 수술을 하고 회복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스스로를 병자(病者)며 암 경험자라 부른다. 치료 과정에서 틈틈이 쓴 글을 모아 밖으로 내보냈다. 나름의 주관을 가진 한 사람이 고통을 어떻게 헤쳐나가는지 애틋한 심정으로 읽었다. 는 보통의 투병기와는 결을 달리 한다. 작가는 솔직하고 객관적인 시각을 냉철하게 유지하며 자신을 지켜나간다. 암 환자가 세상과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진솔하게 쓰여 있다. 인간은 타인의 고통에 대해 대체로 무감각하다. 직접 경험하는 것과 방관자가 되는 것은 천지차이다. 작가는 당사자이면서 관찰자로서 자신을 바라본다. 이 책에는 인간의 연약함에 대한 슬픔이 배어있지만 인간 정신의 높음을 상기..
일본인 의사인 나카무라 진이치 선생이 쓴 책이다. 선생은 1940년생으로 교코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의사로 근무하다가 현재는 노인요양원의 진료소 소장을 맡고 있다. 평생 환자와 노인을 돌보면서 자신이 믿게 된 의료 철학을 이 책에서 설명한다. 제목부터 파격적이다. 편안한 죽음을 맞으려면 의사를 멀리 하라고 한다. 부제도 '당신도 치료 때문에 고통스럽게 죽을 수 있다'이다. 병과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통념을 뒤집는 주장이다. 선생은 말한다. "자연의 순환 속에서 죽음은 원래 조용하고 평온한 것이었다. 생을 마무리하는 당사자에게는 자신의 삶을 완성하는 순간이고, 떠나보내는 사람들에게도 살아 있는 매순간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바로 죽음이다. 그 의미 있는 순간을 의료가 깊이 관여함으로써 더할..
부제가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이다. 김진영 선생이 생애 마지막 1년여의 나날과 심경을 적은 글이다. 자신이 자신을 애도하는 일기인 셈이다. 선생은 암 투병을 하다가 2018년에 세상을 떴다. 선생은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적었다. "2017년 7월 암 선고를 받았다. 그동안 이어지던 일상의 삶들이 셔터를 내린 것처럼 중단되었다.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고 환자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이 글은 그사이 내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을 지나간 작은 사건들의 기록이다. 환자의 삶과 그 삶의 독자성과 권위, 비로소 만나고 발견하게 된 사랑과 감사에 대한 기억과 성철, 세상과 타자들에 대해서 눈 떠진 사유들, 혹은 그냥 무연히 눈 앞으로 마음 곁으로 오고 가고 또 다가와서 떠나는 무의미한 순간들이 그 기록의 내용..
한 달 전부터 어금니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그럭저럭 참고 지냈는데 양치를 하다가 만져보니 많이 흔들리는 것이었다. 전처럼 저 혼자 툭 빠지면 큰일이다 싶어 부랴부랴 치과에 가서 발치를 했다. 그리고 임플란트 공사가 시작되었다. 그동안 이 어금니로 용케 버텨왔다. 2년 전에 앞니 브리지를 할 때 의사 선생님이 이 어금니도 수명이 다했으니 임플란트를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길어봤자 한두 달이라고 했다. 엑스레이 사진과 달리 아무 증상이 없으니 좀 더 기다려보겠다고 나는 답했다. 그런 어금니로 2년을 버텨 온 것이다. 마치 시한부 판정을 받은 환자가 주치의의 예상보다 열 배 넘게 산 셈이다. 그렇지만 치아 상태가 더 좋아질 리는 없는 법, 드디어 종말이 찾아왔다. 같은 죽음이라도 자연사가 훨씬 아름답..
얼마 전에 엉뚱한 기사를 봤다. 외국의 한 단체에서 '세계 최악의 음식 100'을 발표했는데 한국 음식으로는 홍어, 엿, 콩나물밥, 두부전이 들어갔다. 순위로는 홍어가 51위, 엿이 68위, 콩나물밥이 81위, 두부전이 84위였다. 아니 이게 다 몸에 좋은 식품 아니야? 처음 든 느낌은 황당함이었다. 외국인에게 홍어는 강한 암모니아 향이 질색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콩나물밥이나 두부전을 혐오식품이라 하는 것은 생뚱맞았다. 서양인에게는 이 음식들이 이상하게 보였는가 보다. 음식은 각 나라의 문화적 특성이 강하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엿이 왜 최악의 음식에 들어갔는지 의문이다. 식감이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질색할 정도는 아니고 단맛은 만국 공통으로 누구나 좋아하지 않는가 말..
병원 정형외과에서 어머니의 2차 진료가 있었다. 뼈는 잘 아물고 있고 한 달 전에 비해 어머니도 기력을 많이 회복했다. 이젠 물리적 문제이기보다 정신력이 빠른 회복 여부를 결정할 것 같다. 병원에는 동생과 조카가 동행했는데, 진료를 대기하는 동안 나는 아침의 낙동강변을 산책했다. 복사무가 지면 가까이 드리워져 있었다. 이번에는 일찍 가서 진료 신청을 했더니 대기 시간이 20분 정도로 짧았다. 지난번에는 1시간 반을 기다리느라 어머니가 피곤해하고 우리도 짜증이 났었다. 경험을 통해 요령을 배우게 되는 것 같다. 병원에서 나와 꽃구경 겸 가을 볕과 바람을 쐬드리러 백두대간수목원으로 갔다. 한 달 전에는 엄두도 못낼 일이었다. 휠체어를 타야 했지만 이만이라도 하니 감사한 일이었다. 트램에는 휠체어를 실을 수..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가서 진료를 받았다. 퇴원 후 3주 만이었다. 다행히 뼈는 잘 붙고 있고 경과가 좋았다. 다만 어머니가 식사를 잘 못하면서 무기력증을 보여 걱정이다. 집으로 퇴원할 때만 해도 활기에 차서 금방 일어설 것 같았는데, 한 번 몸살을 앓고 난 뒤 상황이 나빠졌다. 만사를 귀찮아하신다. 몸보다 정신에서 문제다. 노인은 몸이나 정신 상태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희망을 주다가도 금방 퇴행을 한다. 사람의 궁리로는 이해하기도 예상하기도 힘들다. 다행히 여동생이 옆에서 정성으로 구완을 하고 있으니 그나마 안심이 된다. 이번에 병원 진료를 받기 위해서 1시간 30분을 대기했다. 그런데 의사와 면담한 시간은 3분 쯤 되었을까. 문을 닫고 나오며 너무 허망했다. 여기는 예약 시간도 없이 그냥 접..
어머니가 퇴원했다. 7월 28일에 입원해서 수술을 받고 8월 13일에 퇴원했으니 17일 만이었다. 정형외과 병동에는 대개 7, 80대의 환자들이 많다. 낙상 사고로 고관절이나 다리뼈가 부러져서 수술을 받고 치료중인데 대개는 2, 3주 입원 후 다시 재활병원으로 옮긴다. 아무래도 노인이다 보니 회복이 느려 정상 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바로 집으로 퇴원해도 좋다고 의사 샘이 흔쾌히 결정을 내려주었다. 수술 뒤 일주일 만에 워커에 의지해 걷기 연습을 시작했으니 간병사를 비롯해 모두가 놀랐다. 사실 우리도 한 달 정도는 재활 치료를 받아야 할 것으로 마음먹고 있었다. 잘못하다가는 다시 걷지 못할까 봐 두렵기도 했다. 그런데 어머니의 회복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아흔다섯 어머니가 빨리 퇴원하는..
어머니가 낙상 사고로 허벅지뼈가 부러져서 수술을 받은 날이 지난 7월 28일이었다. 아흐레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어선지 몇 달이나 되는 것처럼 길게 느껴진다. 그날 허겁지겁 250km를 달려가서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엑스레이 사진을 보니 왼쪽 허벅지뼈가 엿가락 부러지듯 두 동강 나 있었다. 두세 가지의 신체상 우려가 있었지만 다행히 어머니는 수술을 잘 견뎠다. 그리고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일주일만에 걷기 연습을 시작했다. 아흔다섯의 인간 승리가 아닐 수 없다. 어머니는 다음주에 퇴원을 한다. 워낙 고령이라 재활병원에서 치료를 이어가는 장기전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빠른 회복을 보이신 것이다. 이런 상태면 집으로 가도 너끈하다고 의사 선생님이 허락했다. 어머..
모임이 있어 서울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전화를 받았다. 고향에 살고 있는 친구로부터였다. 이런 갑작스러운 전화라면 예감이 좋지 않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가 마당에서 넘어져 뼈가 부러지고 병원으로 실려갔다는 내용이었다. 닷새 전인 7월 29일 11시경이었다. 약속을 취소하고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와 가방을 꾸려 병원으로 향했다. 오후 3시 전에 도착해야 동의서를 작성하고 수술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해서 최대한 액셀을 밟으며 달렸다. 다행히 안동병원까지 20분 전에 닿을 수 있었다. 어머니는 응급실에서 고통을 참으며 기다리고 계셨다. 엑스레이 사진을 보니 허벅지뼈가 두 동강 나 있었다. 철심을 박아 고정시키는 수술이라고 의사가 설명했다. 어머니가 다시 걸을 수 있을지가 가장 궁금했다.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