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아픈 몸을 살다

아서 프랭크는 의료사회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캐나다 캘거리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40대 때 경험한 심장마비와 암이 이 책을 쓰는 계기가 되었다. 자신의 질병 경험을 나눔으로써 질병의 의미와 가치를 공유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질병은 무작위로 찾아오지만 '잘 아프기'는 개인의 책임일 수 있다. 지은이는 고환암에 걸렸다. 수차례의 화학요법 치료를 받으며 어려운 과정을 극복하고 완치 판정을 받았다. 나는 심각한 질병을 앓은 경험은 없지만, 환자의 고통과 고충에 공감하며 읽었다. 우리는 언젠가는 죽고, 죽기 전에 크건 작건 질병의 기간을 통과의례로 거쳐야 한다.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다. 그중에서도 자신의 몸이 '의학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표현은 재미있다. 환자가 되면 병원에 입원해야 하고 온갖..

읽고본느낌 2018.05.27

티눈

발에 통증이 감지된 건 서너 해 전이었다. 새끼발가락 부근의 바깥쪽으로 신발과 제일 많이 접촉되는 부위였다. 만지면 딱딱한 게 잡히면서 누르면 아팠다. 많이 걸으니 굳은살이 생기는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올해 들어서는 걸을 때 절뚝거릴 정도가 되었다. 견디다 못해 병원에 갔더니 티눈이 세게 생겼다고 한다. 석 달째 냉동치료를 받고 있다. 초기에 손을 봤으면 쉽게 고쳤을 텐데 뿌리가 깊어선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저께는 의사한테 야단을 맞았다. 걷는 걸 조심하지 않으면 치료가 잘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쉽게 재발한단다. 사실 티눈을 가볍게 보고 치료 중임에도 전혀 조심하지 않았다. 통증이 가라앉았다고 이산 저산을 쏘다녔다. 쉽게 나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만만치 않다. 내 일상의 행복..

길위의단상 2018.05.19

62.9kg

연초에 떡국을 먹다가 체한 뒤로 열흘 넘게 애먹고 있다. 계속 속이 부글거리며 소화가 안 된다. 나이가 드니 한 번 탈이 나면 여진이 길다. 아침에 체중계에 올라서니 62.9kg이 찍혔다. 죽을 자주 먹어선지 며칠 사이에 1.5kg이 빠졌다. 작년 한때는 66kg까지 올라갔다. 안 되겠다 싶어 몸무게에 신경을 써 64kg대까지 맞추었다. 사실 62~63kg에서 몸이 가장 가볍게 느껴진다. 이번에 자동으로 다이어트가 되었다. 그저께는 아내 등쌀에 병원에 갔다. 의사는 위내시경 검사를 해야 처방할 수 있다면서 당장 검사를 권했다. 단순한 속 부글거림인데 내시경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 일단 거부했다. 이왕이면 대장과 같이 검진을 받아보기로 했다. 위와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은 게 8년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사진속일상 2018.01.12

과하면 체한다

손발이 차서 집안에서 덧신을 걸치고, 잘 때는 수면양말을 신는다. 혈액 순환에 원인이 있는 것 같다. 젊을 때부터 그랬는데 나이가 드니 증상이 더 심해진다. 찬 방바닥에 맨발이 닿으면 얼음장 위에 서 있는 것 같다. 친구한테 얘기했더니 발 운동을 권했다. 발 부딪치기인데 두 다리를 쭉 펴고 발을 모은 다음 뒤축은 고정한 채 앞부분을 좌우로 움직여 부딪치는 운동이다. 발에 자극을 주니 혈액 순환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열심히 따라 했다. 다다익선이라고 많이 할수록 좋다고 해서 욕심을 부렸다. 장난 같아 보이는 운동이지만 실제 해보면 만만치 않다. 다리 근육을 많이 써야 한다. 언제부턴가 엉덩이 근육이 아파오더니 결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일상생활이 불편할 정도다. 빨리 효과를 보려는 욕심에 너무 과했던 것 같..

참살이의꿈 2017.07.30

건강에 관한 어떤 생각

이웃 블로그에서 본 글이다. 일본 의사가 쓴 것 같은데 병과 건강에 관한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 내용이다. 일부 지나치다 싶은 견해도 있지만 대체로 공감이 간다. 약과 의사에 너무 의존하지 말라는 충고다. 특히 암에 대해서는 현대의 치료법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이다. 자연 치유라고 할까, 내버려두면 낫는다는 생각에 전체적으로 깔려 있다. 참고할 만한 내용이다. 1. 환자는 병원의 돈줄이다. 의료도 비지니스이며, 그것이 의사의 생계 수단임을 알아야 한다. 2. 병원에 자주 가는 사람일수록 빨리 죽는다. 40여 년간 의사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환자를 지켜본 결과, 장기를 절제해도 암은 낫지 않고 항암제는 고통을 줄 뿐이다. 3. 노화 현상을 질병으로 봐서는 안 된다. 나이가 들면 혈관은 탄력이 떨어지고 딱딱해지..

길위의단상 2017.07.21

아프면 서러워

우리 동네에도 종합병원이 생겼다. 손주가 옆에 있으니 병원에 자주 들락거린다. 어린아이는 병치레가 잦다. 대부분이 감기 증세다. 옛날 같으면 참고 견딜 만한 것도 요즘은 무조건 병원에 간다. 그 결과 약을 달고 산다. 기침이 심하다고 최근에는 두 번이나 폐 사진을 찍었다. 조기 치료도 좋지만 어릴 때부터 과잉 진료가 아닌지 안타깝다. 그러나 옆에서 콜록대는 자식을 보며 버티기만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속말을 참고 기사 노릇을 할 뿐이다. 진료실 밖에서 대기하다 보면 이런저런 환자를 본다. 남의 일 같지 않다. 병원에 갈 때마다, 아프면 안 되는데, 라는 독백이 절로 난다. 아픈 것만큼 서러운 게 없다. 지지난해 병원에 입원했을 때 제일 두려웠던 건 무력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

길위의단상 2017.05.01

부러워라

12박 13일 동안 패키지로 유럽 여행을 다녀온 친구가 있다. 너무나 원기왕성한 친구다. 이 친구는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집에 짐을 풀자마자 차로 한 시간 거리인 텃밭으로 달려가 땅을 고르고 채소를 심었다. 다음날은 시제를 지내러 KTX를 타고 목포로 내려갔다. 올라와서는 꽃 보러 산에 같이 가자고 한다. 먼 나라 여행을 다녀왔으면 피곤해서 며칠 쉬어야 정상이 아닌가.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에너지다. 천생이 약골인 나는 이런 체력을 보면 너무 부럽다. 해외에 나갔다 오면 두 주일 정도는 헤매는 게 보통이다. 시차 부조화로 잠자는 시간이 흐트러지니 밤낮없이 약 먹은 병아리처럼 비실거린다. 도시 외출할 기운이 생기지 않는다. 이번에 뉴질랜드에서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였다. 겨우 회복되는 듯하여 바깥 걸음을 했다..

길위의단상 2017.04.12

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간다

아버지의 마지막을 함께 한 소설가 이상운 씨의 간병 기록이다. 80대 후반의 아버지는 어느 날 갑자기 고열로 시작해 섬망 증세를 보이며 병원 신세를 지는 환자가 되었다. 서울에 있던 아들은 아버지의 병간호를 위해 포항 고향집으로 내려온다. 돌아가시기까지 3년 반 동안 병든 아버지와 동행하면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고통의 현장과 함께 한다. 요양원 대신 집에서 아버지의 마지막 수년을 지킨 행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가 병원이나 요양원을 싫어한 것도 한 원인이겠지만, 가족을 서울에 남겨 두고 혼자 고향에서 아버지를 모신 것만으로도 요즘 세상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지은이는 그 과정에서 삶과 노화와 질병과 죽음, 그리고 그에 대처하는 우리의 현실에 대해 많은 배움과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한다..

읽고본느낌 2016.10.02

까불지 마

허리가 삐끗해서 열흘째 바깥나들이를 못 하고 있다. 일 년에 한 번 정도 겪는 연례행사다. 디스크 수술을 받은 뒤로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불시에 찾아온다. 이젠 내 나름대로 통증에 대처하는 방법도 가지고 있다. 이놈이 오면 모든 게 올스톱이다. 다리 근육이 땅기고 허리에 힘을 못 쓰니 정상 생활을 할 수가 없다. 심하면 세수하기도 어렵고 똥 눌 때 힘을 주지도 못한다. 그래도 디스크로 고생했을 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직장에 다닐 때는 며칠간 결근을 했지만 백수인 지금은 걱정할 게 없다. 그저 누워 있으면 된다. 전에는 병원도 다니고 침도 맞고 했지만 별 효과가 없다는 걸 터득했다. 낫는 데 걸리는 기간은 대동소이하다. 좀 짜증 나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떠나간다. 정상으로 돌..

길위의단상 2016.07.24

남 일 아니야

작년부터 병원 출입이 잦다. 올해는 방문 목록에 신경과가 추가되었다. 병원에 가 보면 아픈 사람들도 많다는 걸 안다. 하나같이 남의 일로 보이지 않는다. 건강할 때는 나와는 관계없는 일로 여겼다. 늙고 병든다는 건 먼 얘기였다. 그러나 언제인가부터 달라지고 있다. 어린아이를 보면 손주 같고, 노인을 보면 시골에 계신 어머니가 생각난다. 휠체어에 탄 여든이 넘은 할아버지를 환갑은 족히 지났을 아들이 밀고 간다. 어머니 건강이 여의치 못하면 나 역시 어쩔 수 없으리라. 내 모습이 투영되니 심란해지지 않을 수 없다. 남 걱정할 때가 아니다. 내 몸뚱이 사정도 당장 내일 일을 모른다. 검사 결과에 따라 환자복을 입는 신세가 될 수도 있다. 늙고 병들고 죽는 인생사가 깃털만큼 가볍다. 그래선지 TV를 보다가도 슬..

길위의단상 2016.04.03

곰소

요양병원 로비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눈동자는 바람이 지나갈 만큼 텅 비었다. 누굴 기다리기 위해 입구에 나와 있는 걸까? 그러나 찾아온 이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다. 당숙은 젊은 시절 고생한 이야기를 고장난 카세트처럼 줄기차게 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본인의 일생을 억울해하며 한탄했다. '백세 인생'은 HD TV의 화려한 색깔이 아니다. 우리는 긴 노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테스트 받는 첫 세대다. 일찍 저세상으로 간 사람이 축복이었다는 말을 듣게 되는 일만은 제발 없기를..... 요양병원 건물 외벽은 알록달록 무지개 색깔로 단장되어 있어 서글픔을 더했다. 썰물이 되어 물이 빠져나간 곰소 앞바다는 너무 쓸쓸했다.

사진속일상 2016.02.15

입원실 유감

메르스 때문에 나라가 시끄럽다. 어제까지 사망자가 19명, 확진자가 154명이고, 격리자는 5천 명이 넘었다. 첫 환자가 메르스 증상을 보인지 한 달 동안의 피해다. 하루에 40명이 자살하고, 교통사고로 20명씩 죽어도 사람들은 무감각하지만 전염병에는 굉장히 민감하다.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 유전자에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의학에 무지하던 시절, 한 번 창궐하면 수백만 명씩 죽어 나갔던 전염병은 공포였을 것이다. 메르스 바이러스는 우리나라에서 유독 전염성이 강해 보인다. 그 원인 중 하나로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병실 문화를 꼽는다. 환자가 입원하면 가족이 간병하고, 입원실은 방문하는 외부인으로 북적인다. 전염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메르스 발생 전이지만 지난달에 열흘간 입원해 있으면서 느낀 점이 ..

길위의단상 2015.06.17

늙어가는 징조

거실 소파에 앉아 있으면 베란다 유리창으로 바깥 풍경이 보인다. 드문드문 사람이 오가고, 가끔 차들이 지나갈 뿐인 길이 초등학교 하교 시간이 되면 재잘거리는 아이들 소리로 분주해진다. 여름이라 창문을 열어놓으니 바깥의 소리가 집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생활 소음을 들으며 지켜보는 것도 재미난 구경거리다. 전에는 그러지 않았다. 내가 사는 집의 제일 조건은 절간처럼 조용해야 했다. 에어컨을 들여놓은 것도 더위보다는 소음 차단이 주목적이었다. 산과 마주한 옆 동에 사는 사람이 제일 부러웠다. 너무 조용한 것이 싫다고, 밤이 되어 깜깜한 숲을 보는 게 무섭다고 한 그분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적막을 좋아했고 작은 소음에도 노이로제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두 달 가까이 바깥출입을 하지 못하는 경험을 ..

참살이의꿈 2015.06.16

인생의 주기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폐렴에 걸렸다. 고열에 기침이 계속 이어졌다. 위의 형을 잃은 뒤라 가족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무리 해도 낫지 않자 어머니는 병원 가까운 곳에 방을 하나 얻어 치료에 매달렸다. 집에서 4km 정도 떨어진 작은 읍이었다. 병실이 없으니 매일 병원으로 왕래해야 했다. 그러나 차도는 없었다. 그렇다고 대도시로 나갈 형편도 못 되었다. 나는 거의 마지막 숨을 쉬고 있었다. 그때 서울에 사는 친척이 소식을 듣고 페니실린을 구해서 내려왔다. 결과적으로 페니실린은 내 목숨을 살린 기적의 약이 되었다. 어머니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페니실린 주사를 맞자마자 얼굴에 화색이 돌고 열이 내렸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에서 수많은 생명을 구한 페니실린이 나에게도 구세주가 된 셈이다. 무슨 ..

참살이의꿈 2015.05.24

한 달 만에 외출하다

꼭 한 달 만에 바깥에 나섰다. 느린 걸음으로 뒷산 언저리를 한 시간 정도 돌았다. 산길은 이미 녹음 터널이 되었고, 아까시 꽃향기가 바람을 타고 살랑거렸다. 몸 상태는 여전히 온전치 못하다. 바람을 쐬면 기침이 간헐적으로 튀어나온다. 폐렴은 진정되었다고 하는데, 아직 남아 있는 편도염 때문인지 모른다. 간 수치도 나쁘다고 하니까 내일 병원에 가서 최종 확인을 받아봐야 한다. 몸이 부실하니 마음도 불안정하다. 책 읽기가 제대로 안 되는 걸 보면 안다. 요사이는 팟캐스트를 통해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연속으로 듣고 있다. 이런저런 인생사에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나도 덩달아 찡해진다. 스님의 설법에는 카르마와 과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마음을 다스리는 데 유익한 효과가 있음을 발견한다. 둘..

사진속일상 2015.05.18

낯설다

여행을 다녀오면 일상이 낯설어진다. 기간이 길고 혼자 떠난 여행일수록 그렇다. 익숙한 사물과 사람이 새롭고 낯설게 느껴지는 경험은 여행이 주는 선물이다. 고리타분한 일상에서 벗어나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해 주기 때문이다. 살면서 이런 신선한 바람이 필요하다. 좋은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왜 책을 읽는가? 독서는 관습과 타성에 젖은 뇌를 깨어나게 한다.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혀준다는 의미에서 독서는 여행과 닮았다. 고만고만한 일상에서 탈출할 수 있는 키워드를 둘은 내장하고 있다. 책을 읽고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내면의 보물찾기라 할 수 있다. 이번에 폐렴으로 입원해 있으면서 질병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는 걸 발견했다. 아픈 경험 역시 세상을 낯설게 만든다. 병은 고통이 수반된다는 점에서 독서나 여..

참살이의꿈 2015.05.10

퇴원

폐렴으로 입원한 지 열흘 만에 퇴원했다. 집에 와서는 밤낮없이 잠만 자고 있다. 아직 온전한 상태는 아니다. 그래도 집에 오니 마음은 편하다. 병실 생활은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병원에서는 무슨 검사를 그렇게 자주 하는지 모르겠다. CT 촬영은 어쩔 수 없다 해도 , 엑스레이와 혈액검사를 각각 다섯 번씩이나 받았다. 의사는 확인이 필요하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너무 남용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환자가 검사를 받지 않겠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30대 중반에 디스크 수술을 받은 이래 오랜만에 병원 신세를 졌다. 병실은 3인실에 있었다. 독실은 부담이 너무 크고, 다인실은 신경 쓰이는 게 많았기 때문이다. 코를 심하게 고는 편이라 다른 사람의 수면을 방해하는 것도 두려웠다. 서로 생활 스타일이 다른..

길위의단상 2015.05.08

입원

폐렴으로 입원 닷새째, 생각지도 않은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증세가 나타난 초기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날이 갈수록 기침이 심해지며 음식을 삼킬 수도 없게 되었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집 가까이 있는 병원에 왔다가 바로 갇혀 버렸다. 다행히 여기 와서는 상태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이런 변화라면 나흘 뒤쯤에는 퇴원할 수 있을 거라고 담당 의사가 말한다. 지금은 몸이 아픈 것보다 병실 생활 자체가 힘들다. 좁은 공간에서 공동생활을 하려니 참아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곳은 병고에 시달리는 인생의 괴로움이 늪처럼 고여 있다. 유리창으로 보이는 5월의 신록이 찬란하다. 그러나 그 품에 안길 수 없다. 당장은 아쉽지만 그래도 넉넉히 참을 만하다. 이 병이 낫고 다시 땅에 설 때 햇빛은 환하고 숲..

길위의단상 2015.05.01

초망한 소원 / 이경학

울 엄니 한 번 업어봤으면.... 출세해서 이층집 짓는 욕심은 예전에 부질없는 것인 줄 깨달았고 통일되어 아버지 모시고 고향가는 꿈은 엊그제 신문에서 미적미적 멀어졌으나 이 새벽 닥친 추위에 이불자락 끌어당기며 끝까지 놓치지 않은 하나 남은 소원은, 울 엄니 한 번 업어드려 봤으면.... 휠체어 박차고 일어나 두 발로 떳떳이 서서 울 엄니 따스한 배를 내 등허리에 얹어봤으면.... 저 작은 여인네 손주 안아보시겠다고 연세 많이 드셔서도 끝내 균형을 잃지 않고 계시니, 천성이 명랑한 아낙네 아들 사람 되는 꼴 보시겠다고 그 모진 세월에도 걸음걸이 빠르고 반듯하시니.... 달랑 업고 동네 한 바퀴 돌아봤으면.... 오래 사시겠다고 다짐하시는 뜻이 나 일어설 때까지 곁에서 지켜주시겠다는 것이니 그 의지를 믿고..

시읽는기쁨 2014.08.30

독배 / 나태주

아빠는 왜 그렇게 포기하지 못하고 그러는 거예요? 혼자만 고집부리고 그러는 거예요? 의사들이 다들 안 된다 그러고, 자료를 봐도 아빠는 살 수 없는 사람이 확실한데 왜 아빠 혼자만 그렇게 포기하지 못하고 끝까지 매달리고 울고불고 그러는 거예요? 그렇다면 날더러 그냥 죽으란 말이냐! 그런 건 아니구요, 아빠가 하도 포기하기 못하고 매달리고 그러니까 애달파서 하는 말이에요. 아니, 어떤 딸이 그렇게 애비한테 매정하게 말할 수 있단 말이냐! 아빠, 생각해보세요. 엄마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죽은 아이도 있고 젊은 시절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도 있어요. 그걸 좀 생각해보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시라고 드리는 말씀이에요. 이렇게 말을 하고 저렇게 말을 바꾸어도 그것은 죽으라는 말밖에 다른 말이 아니지 않느냐! 어떤 딸이 ..

시읽는기쁨 2014.08.20

감기와 스트레스

감기몸살이 진하게 찾아왔다. 닷새 동안 끙끙 앓고 나니 조금 사그라진다. 백수였기 망정이지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면 훨씬 더 오래 끌었을 것이다. 감기에 걸려도 약을 안 먹고 견디는 편인데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병원 신세를 졌다. 그만큼 증상이 복합적인데다 특히 기침이 심했다. 블로그에 들어오기도 귀찮아서 며칠간 공백이 생겼다. 밖에 쏘다녔거나 무리한 생활을 한 것도 아닌데 감기에 걸린 것은 올 초부터 받고 있는 스트레스가 원인인 것 같다. 바이러스에 노출될 때 증상으로 연결되느냐 않느냐는 것은 면역력과 관계가 있다. 과로와 함께 정신적 스트레스도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중요한 요인이다. 지속적인 스트레스 때문에 신체의 방어벽이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는 더구나 아내가 부재중이어서 더 힘들었다. 아픈 ..

길위의단상 2014.02.13

유방 / 문정희

윗옷 모두 벗기운 채 맨살로 차가운 기계를 끌어안는다 찌그러드는 유두 속으로 공포가 독한 에테르 냄새로 파고든다 패잔병처럼 두 팔을 들고 맑은 달 속의 흑점을 찾아 유방암 사진을 찍는다 사춘기 때부터 레이스 헝겊 속에 꼭꼭 싸매놓은 유방 누구에게나 있지만 항상 여자의 것만 문제가 되어 마치 수치스러운 과일이 달린 듯 깊이 숨겨놨던 유방 우리의 어머니가 이를 통해 지혜와 사랑을 입에 넣어주셨듯이 세상의 아이들을 키운 비옥한 대자연의 구릉 다행히 내게도 두 개나 있어 좋았지만 오랜동안 진정 나의 소유가 아니었다 사랑하는 남자의 것이었고 또 아기의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나 지금 윗옷 모두 벗기운 채 맨살로 차가운 기계를 안고 서서 이 유방이 나의 것임을 뼈저리게 느낀다 맑은 달 속의 흑점을 찾아 축 늘어진 슬픈..

시읽는기쁨 2013.09.04

아내의 다짐

아내는 몸이 많이 부실하다. 5년 전의 큰 수술 후 더 나빠졌다. 조금씩 좋아지고는 있지만, 아직 여진이 끝나지 않았다. 어제는 구토가 나고 머리가 어지러워서 종일 누워있어야 했다. 뇌에 이상이 온 건 아닌지 병원 진료를 받아봐야 할 것 같다. 그래선지 아내는 요사이 부쩍 건강에 관심이 많아졌다. 요가를 하고, 장신대에서 하는 자연치유 강좌에도 나간다. 거기서 권해 준 방법을 집에서도 열심히 실천한다. 애쓰는 게 보이지만 나아지는 속도는 거북이보다 느리다. 노란 스티커에 써 놓은 아내의 메모를 보았다. 혼자의 시간 - 산 복식호흡과 여유 의식적으로 웃기 밤에는 다른 일 하지 않고 잠자기 위한 준비 아파하는 사람을 옆에서 지켜볼 때면 무력감을 느낀다. 고통은 온전히 아픈 사람 혼자서 감내해야 한다. 옆에 ..

길위의단상 2013.07.23

직업병

얼마 전부터 손목과 손가락이 아프기 시작했다. 원인을 추리해보니 책 보는 습관 때문이 아닌가 판단된다. 게으르다 보니 책을 볼 때는 주로 누워서 두 손으로 떠받치고 본다. 팔과 손가락에 큰 힘이 들어가야 하는 자세다. 편한 것만 찾다 보니 팔이 고생을 한다. 그래서 요사이는 배 위에 베개 두 개를 올려놓고 그 위에 책을 놓고 본다. 그래선지 통증이 많이 완화되었다. 게으른 백수의 직업병이다. 또 손가락 중에서는 오른손 둘째 손가락이 제일 아프다. 이 원인도 추리해 보니 너무 자주 마우스를 클릭한 탓인 것 같다. 하루에 서너 시간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보고, 필요한 정보를 찾는데 그 정도 시간이 든다. 그러다 보니 손가락 한 개가 혹사를 당한 모양이다. 업무..

길위의단상 2013.05.17

일주일째

일주일째 문밖을 못 나가고 있다.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가 떠날 생각을 안 한다. 누워 있길 좋아하는 친구라 같이 지내자니 하루의 2/3는 나도 따라 누워서 빈둥거린다. 그래도 마음 하나만은 편하다. 직장에 다닐 때는 결근 신청을 하는 데도 괜히 미안하고 눈치가 보였다. 구부정한 허리를 가지고 억지로라도 출근했을 것이다. 누워 있어도 베란다 창을 통해 바깥 경치는 다 보인다. 봄 햇살이 따스해 보이는데 직접 쬐지는 못한다. 씩씩한 걸음으로 뒷산을 향하는 사람들을 본다. 아쉬운 점은 이번 주에 산청 삼매를 보러 가기로 했었는데 이미 그쪽 매화는 졌다는 소식이다. 내년으로 자동 연기되었다. 또, 한식에 선친 산소를 찾아가는 것도 미뤄지게 됐다. 청계산과 천마산의 봄꽃도 눈에 아른거린다. 그러나 새로운 구경거리..

길위의단상 2013.04.06

병에게 / 조지훈

어딜 가서 까맣게 소식을 끊고 지내다가도 내가 오래 시달리던 일손을 떼고 마악 안도의 숨을 돌리려고 할 때면 그때 자네는 어김없이 나를 찾아오네 자네는 언제나 우울한 방문객 어두운 음계(音階)를 밟으며 불길한 그림자를 이끌고 오지만 자네는 나의 오랜 친구이기에 나는 자네를 잊어버리고 있었던 그동안을 뉘우치게 되네 자네는 나에게 휴식을 권하고 생(生)의 외경(畏敬)을 가르치네 그러나 자네가 내 귀에 속삭이는 것은 마냥 허무(虛無)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자네의 그 나즉하고 무거운 음성을 듣는 것이 더없이 흐뭇하네 내 뜨거운 이마를 짚어주는 자네의 손은 내 손보다 뜨겁네 자네 여윈 이마의 주름살은 내 이마보다도 눈물겨웁네 나는 자네에게서 젊은 날의 초췌한 내 모습을 보고 좀더 성실하게 성실하게 하던 그날의..

시읽는기쁨 2013.04.01

한 달 동안의 금주

이빨 4개를 빼고, 때우고, 신경치료 하는데 거의 한 달이 걸렸다. 특히 신경치료가 복잡했다. 치아에 있는 신경을 죽이고 보철물을 씌우는 작업인데 갈 때마다 2시간 가까이 입을 벌리고 있어야 했다. 의사 선생님도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치료 기간에는 술을 딱 끊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금주를 한 건 처음이었다. 비 오는 날, 부침개를 앞에 두고 소주병을 꺼냈다가는 도로 원위치시킨 게 여러 번이었다. 밖에서는 "웬일이야?" 하는 소리도 들었다. 알코올 중독이 아니어서인지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은퇴를 하고 나니 술 마시는 기회가 줄어들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 아무래도 모임이나 회식이 잦고 술이 빠질 수가 없다.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저절로 술을 찾게 된다. 또, 퇴직과 동시에 서울을 떴으니 친구..

길위의단상 2012.09.02

이런 몸을 가지고

중국에 다녀온 뒤 심한 몸살을 앓았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인데도 난방을 때고 겨울 이불을 꺼내 덮었다. 이틀을 끙끙거린 뒤 다행히 열은 내렸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이빨도 탈이 났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하나에서 통증이 왔다. 혀만 스쳐도 아픔이 더 했다. 다른 하나는 찬 게 닿으면 견딜 수 없게 욱신거렸다. 치과에 갔더니 둘 다 신경 치료에 대수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주변에 있는 다른 한 개까지 세 개의 이빨을 치료하는데 거금 150만 원이 들었다. 지금도 병원 왕래 중이다. 이 모든 게 중국 여행의 여파인 것 같다. 피로 누적이 몸살과 이빨의 병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는 너무 더워서 찬 아이스케키를 마구 깨물어 먹었다. 평소 부실했던 이빨이 이때다, 하고 신호를 보낸 것이다..

길위의단상 2012.08.12

아흔 개의 봄

'역사학자 김기협의 시병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치매에 걸린 아흔 노모를 돌보고 있는 아들의 기록이다. 2007년 6월에 갑자기 쓰러진 선생의 모친은 병원과 요양원에서 지내는데, 선생은 집과 시설을 오가며 극진히 보살펴 드린다. 책에는 2008년 11월부터 2010년 11월까지 2년간의 기록이 담겨 있다. 처음에는 지인들에게 어머니의 상태를 전하려고 쓰기 시작했는데 내용이 잡지에 연재되면서 책으로까지 출판하게 되었다. 선생은 4남매 중 셋째 아들로 어머니와 관계가 좋지 않았다. 첫째와 둘째만 편애한다고 생각했고, 어머니를 위선자라고 여기며 불화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쓰러지고 난 뒤부터 간병하는 과정을 통해 어머니와 화해하기 시작한다. 이 기록은 모자 사이의 갈등과 화해를 진솔하게 담고 있다. 또 ..

읽고본느낌 2012.06.12

예쁜 발을 갖고 싶다

내 몸에는 세 명의 벗이 있는데 그들 이름은 과민성대장증상과 외이염, 그리고 무좀이다. 과민성대장증상은 언제부터 친구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거의 유전적인 영향인 것 같으니 어머니 뱃속에서 시작된 셈이다. 이 친구는 40대 때 최전성기를 구가하다가 지금은 잠잠해졌다. 그때는 커피도 마시지 못했고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하루에도 몇 번씩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했다. 그러나 지금도 에어컨 빵빵하게 나오는 지하철에 타면 이내 신호가 온다. 그래서 손이나 가방으로 꼭 배를 가리고 있어야 한다. 나에게는 제일 예민한 부위가 배다. 외이염은 사귄지 20년 정도 되었다. 디스크 수술 후 허리 운동에 좋다고 해서 수영을 했는데 그때 이 친구가 찾아왔다. 처음에 제대로 고쳤으면 별 탈이 없었을 텐데 병원에 가기 싫어 그대로..

길위의단상 2010.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