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부러워라

샌. 2017. 4. 12. 14:24

12박 13일 동안 패키지로 유럽 여행을 다녀온 친구가 있다. 너무나 원기왕성한 친구다. 이 친구는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집에 짐을 풀자마자 차로 한 시간 거리인 텃밭으로 달려가 땅을 고르고 채소를 심었다. 다음날은 시제를 지내러 KTX를 타고 목포로 내려갔다. 올라와서는 꽃 보러 산에 같이 가자고 한다. 먼 나라 여행을 다녀왔으면 피곤해서 며칠 쉬어야 정상이 아닌가.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에너지다.

 

천생이 약골인 나는 이런 체력을 보면 너무 부럽다. 해외에 나갔다 오면 두 주일 정도는 헤매는 게 보통이다. 시차 부조화로 잠자는 시간이 흐트러지니 밤낮없이 약 먹은 병아리처럼 비실거린다. 도시 외출할 기운이 생기지 않는다. 이번에 뉴질랜드에서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였다. 겨우 회복되는 듯하여 바깥 걸음을 했다가 감기에 걸려 일주일째 고생 중이다. 밖은 벚꽃으로 환한데 집안에서 한숨만 쉬고 있다.

 

이런 체질은 무리를 할 수가 없다. 어떤 사람은 감기에 걸려도 약을 먹으며 씩씩하게 제 할 일은 한다. 먹고 살아야 하니 마지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래도 버틸 수 있으니까 일을 할 수 있다. 나는 직장에 다닐 때도 병가를 낼 때가 잦았다. 엄살을 부린다는 말도 들었지만 기진맥진한 나는 어쩔 수 없었다.

 

옛말에 '골골 팔십'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은 평균 수명이 팔십까지 올라갔으니 '골골 백'이라고 바꿔야 할 것 같다. 약골은 조심하며 살 수밖에 없다. 반면에 체력에 자신 있는 사람은 자기 건강을 과신하고 무리하기 쉽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면 큰 탈이 생긴다. 건강 관리에서는 약골이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다.

 

건강도 상대적이다. 누구와 비교하느냐에 따라 제 건강에 대한 평가도 달라진다. 병원에 가서 한 시간만 있어보면 내가 얼마나 건강한 사람인지 실감한다. 감기약을 받으러 온 것 가지고는 명함도 못 내민다. 나를 보며 부러워할 사람도 많다. 중요한 것은 제 처한 상태를 감사하며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화사한 봄날인데 모니터로만 꽃소식을 접하자니 내가 한심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럴 때는 친구의 체력에 시샘까지 느낀다. 한편으로는 밖을 열심히 쏘다닌다고 뾰족한 수가 나는 것은 아니야, 라고 자기 위로를 한다. 그렇게 봄날은 무르익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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