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폐렴에 걸렸다. 고열에 기침이 계속 이어졌다. 위의 형을 잃은 뒤라 가족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무리 해도 낫지 않자 어머니는 병원 가까운 곳에 방을 하나 얻어 치료에 매달렸다. 집에서 4km 정도 떨어진 작은 읍이었다. 병실이 없으니 매일 병원으로 왕래해야 했다. 그러나 차도는 없었다. 그렇다고 대도시로 나갈 형편도 못 되었다. 나는 거의 마지막 숨을 쉬고 있었다. 그때 서울에 사는 친척이 소식을 듣고 페니실린을 구해서 내려왔다. 결과적으로 페니실린은 내 목숨을 살린 기적의 약이 되었다. 어머니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페니실린 주사를 맞자마자 얼굴에 화색이 돌고 열이 내렸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에서 수많은 생명을 구한 페니실린이 나에게도 구세주가 된 셈이다.
무슨 인연인지 꼭 한 갑자가 지나서 다시 폐렴에 걸렸다. 그동안 많은 감기에 걸렸지만 폐렴으로 이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인생이 반복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젠가 명리학책을 보다가 대운이 10년 주기로 나타난다는 내용을 보았다. 나에게도 적용해 보니 얼추 맞는 것 같기도 했다. 자연 현상과 마찬가지로 인생에도 주기성이 있는지 모른다. 10년 주기의 작은 사이클은 책을 보고 알았지만, 60년 주기의 큰 사이클은 이번에 폐렴을 앓으면서 떠오른 생각이다.
인간의 육체적 능력으로는 120세까지 사는 게 가능하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60년 주기를 두 번 경험하는 것이다. 후반부 60년은 어쩌면 전반부 60년을 반복하는 것인지 모른다. 물론 형태를 달리하겠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서로 연결된 인생을 산다고 할 수 있다. 앞이 인(因)이 되고, 뒤가 과(果)가 되는 것이다. 현재 팽창하는 우주는 언젠가는 다시 수축해서 빅뱅의 시점으로 회귀할 수도 있다. 수축 시기는 순서만 거꾸로일 뿐 팽창 시기를 반복할 것이다. 우주의 팽창과 수축이 인생 120년의 과정과 닮아 보인다.
60년의 간격을 두고 찾아온 폐렴을 보면서 이런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맞는지 안 맞는지는 모르지만 인생에 어떤 리듬이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젊었을 때 바이오리듬이란 게 유행한 적이 있었다. 인체에는 신체, 감성, 지성의 세 가지 주기적 리듬이 있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한다는 이론이다. 신체는 23일, 감성은 28일, 지성은 33일을 주기로 규칙적으로 반복한다. 그래서 탄생일의 바이오리듬으로 돌아가는 데 58년이 걸린다. 한 갑자와 대략 비슷하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묘하다.
장수 사회가 되다 보니 60살은 이제 인생 후반부의 시작이 되었다. 60년 주기의 인생 사이클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후반부는 전반부에서 산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큰 뼈대는 이미 그려져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침대에서 떠오른 60년 주기설도 전혀 헛된 생각이 아니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