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일은 언제까지 필요할까

샌. 2015. 4. 15. 07:51

퇴직한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이 있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면서 살다가 갑자기 손을 놓게 되었을 때 대부분이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 시간을 버거워한다. 어딘가에 소속되고 주어진 일을 해야 편안하게 느끼는 게 습관이 되었다.

 

설사 일을 구하지 않더라도 규칙적인 일과를 가져야 제대로 사는 거라고 착각을 한다. 일없이 빈둥거린다는 건 뭔가 모자라는 것이라고 여긴다. 정시에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는 게 체질화가 되었다. 그런 사람에게 퇴직 후 자유 시간이란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인 것이다.

 

그래서 바쁘게 자신을 몰아붙인다. 취미 활동도 거의 전투 수준이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이 이래서 나오는 거다. 이는 산업화된 사회에서 생기는 슬픈 자화상이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그저 성실하고 근면한 게 미덕인 줄 알고 살았다. 빈둥거리는 게 시간 낭비가 아니다. 하루의 반이 밤이듯 인간에게는 여백이 있어야 한다.

 

일벌레일수록 은퇴 후의 빈 시간에 적응하는데 애를 먹는다. 일만 열심히 할 줄 알았지 자기만의 시간을 누리는 방법은 익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독을 친구 하지 못하는 것이 현대인의 병폐 중 하나다. 그래서 끊임없이 밖으로 탈출한다. 은퇴 후에는 배우자나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다. 준비와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니 서로가 불편하다.

 

아차회 멤버 중 하나가 학교 지킴이 일을 구해 나가기 시작했다. 집에 있으니 답답해서 밖에 나가 사람들과 만나고 얘기를 해야 숨통이 트일 것 같다는 것이다. 퇴직해서 자연과 가까이 지내게 되어 좋다고 큰소리친 게 엊그제 같은데 한 해를 못 버텼다.

 

일자리를 구하는 게 나쁜 건 아니다. 규칙적인 일은 사람에게 생기와 활력을 주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일에 매달려 살 것인가. 젊었을 때 일은 자아 성취의 도구가 되지만, 늙어서 심심풀이로 나가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일은 당장의 지루함을 잊기 위한 마취제일 뿐이다. 자신만의 시간을 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일이나 관계에서가 아니라 혼자서도 시간을 넉넉히 보낼 수 있는 사람이 성숙한 자다. '함께'도 중요하지만, '홀로'는 그 이상으로 소중하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다. 자족은 외적 조건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존재의 기쁨은 혼자 있는 고독의 시간에 샘솟아 나온다. 사람들은 그 희열을 외면한다.

 

나는 이제 은퇴 5년 차에 접어들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아직도 하는 질문이 뭘 하고 지내느냐는 것이다. 그들은 내용보다 포장에 신경을 쓴다. "그래도 뭘 해야지." "걷고 책 보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어떤 사람은 아예 쪼다로 여기는 눈치다. 그러든 말든 나는 지금의 생활에 만족한다. 일을 찾고 무언가에 소속되려는 것은 자기 도피다. 그래서는 일없음의 재미를 언제 맛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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