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허술한 몸

샌. 2019. 1. 11. 12:32

겨우 기력을 회복해 컴퓨터 앞에 앉는다. 독감에 걸린 지 이레째다. 올겨울은 잔병을 달고 지낸다. 한 달여 전인 12월 초에 찾아온 위염이 시작이었다. 소화가 안 되니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연말까지 지냈다. 덕분에 송년 모임은 참석할 수 없었다. 몇 차례는 취해서 해롱거렸을 텐데, 금주한 효과는 있었다.

 

속을 겨우 진정시켰더니 이번에는 독감이 기습했다. 산행 뒤 몸살이 나서 병원에 갔더니 A형 독감 판정을 받았다. 4년 전에는 집에서 미적대다가 폐렴으로 발전해 열흘간 입원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겁이 나서 바로 병원을 찾은 게 다행이었다. 독감 증세는 이제 정점을 지났다. 하지만 몸은 축 늘어진 상태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이석증 증상이 재발했다. 너무 오래 침대에 누워 있었던 탓인지 고개를 돌리는데 핑 돌며 어지럼증이 나타났다. 수년 전까지는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이놈 때문에 고생했지만 근래에는 없어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독감이 물러가면서 옛 동반자를 불러온 것이다. 혼자 쫓겨나기가 억울했는가 보다. 가만있어도 머리가 어지러우니 얼굴은 늘 찡그려 있다. 병원에 가도 별다른 치료법이 없다. 제 발로 떠나가길 기다릴 뿐이다.

 

이번 겨울 들어서는 제대로 된 몸 상태였던 날이 거의 없다. 위염에 독감, 이석증, 더해서 이빨까지 탈이다. 노년으로 들어가는 길목의 통과의례인가 보다. 나이 들고 쇠약해가고 있다는 걸 절실히 느낀다. 물리적 시간은 연속적으로 흐르지만, 인간이 느끼는 심리적 시간은 계단식으로 뜀박질하듯 변한다. 노쇠의 단계에 들어가고 있다는 걸 나는 작년부터 실감하고 있다. 1년 사이에 10년은 늙어버린 것 같다.

 

병이 찾아오면 싸우기보다 같이 벗하며 지내리라 평소에 생각했다. 투병(鬪病)이 아니라 친병(親病)이다. 그러나 위염이나 독감 같은 병 같지 않은 병에도 쉽게 무너지고 만다. 막상 몸이 불편하면 마음의 평정 상태가 어렵다. 손가락에 가시만 들어가도 일상이 흔들려 버린다. 아파보면 우리의 존재 기반이 너무나 불안하다는 걸 깨닫는다. 우리는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가. 내가 내 몸의 주인이라는 생각도 착각이다. 병중에는 무력감에서 헤어나기가 어렵다.

 

17세기에 이탈리아에 보르미니라는 건축가가 있었다. 실력으로는 베르니니에 뒤지지 않았지만 평생을 뒷전에 가려진 불운한 천재였다. 우울증이 심해 그는 칼로 자신의 가슴을 찌르고 자살했다. 보르미니는 죽는 과정을 글로 남겼다.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펜을 놓지 않은 마지막 열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고작 감기 하나로 누워 아무 일도 못 하는 나를 보며 보르미니가 떠올랐다. 관념적인 삶은 허약할 수밖에 없다.

 

아프면 건강한 사람이 제일 부럽다. 몸만 정상이면 무슨 일이든 다 할 듯하다. 그러나 병이 나아도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인간은 제 다짐을 너무 쉽게 잊는다. 중요한 것은 제 처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아닐까 싶다. 건강하면 건강한 대로, 허술하면 허술한 대로 살아갈 뿐이다. 행위의 차이가 삶의 질을 좌우하지 않는다. 병이 아니라 와해하는 정신이 문제다. 제 몸을 칼로 찌르고 서릿발 같은 정신으로 관찰한 보르미니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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