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독감 2라운드

샌. 2019. 1. 14. 17:56

독감에 걸린 지 열흘째다. 재채기와 콧물이 흐르는 증세가 오늘은 더 심해졌다. 집에 같이 있던 아내에게도 독감 바이러스가 옮아갔다. 방 두 개가 병상이 되어 있다. 서로 에스컬레이터 작용을 하는 것 같다. 쉽게 나을 것 같지 않다. 짜증이 많이 난다.

 

열흘 전 남한산성을 간 게 잘못이었다. 일행 중에 독감에 걸린 사람이 있었다. 거의 나아서 나왔다지만 온전하지 않은 몸이었다. 같은 A형 진단을 받았으니, 그로부터 감염된 게 확실하다고 합리적 의심을 해 본다안 좋은 일에는 원망의 대상이 필요하니까.

 

감기에 걸린 사람은 제발 바깥출입을 자제하자. 생계를 위한 일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친목 모임까지야 기어코 나갈 필요가 있을까. 심지어는 콜록거리면서 마스크도 착용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마스크는 남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다. 내 부주의로 타인의 일상이 허물어질 수도 있음을 유의하자.

 

밖에서 바이러스를 얻어와 아내에게 옮겼으니, 나는 피해자면서 가해자다. 인간 세상 자체가 이런 식의 수많은 피해와 가해로 얽혀 있다. 대부분은 타자에게 피해를 준 사실을 모른다. 알더라도 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보이는 내가 받은 피해다. 여기에만 집중하면 세상살이가 억울하고 원망스럽다. 한 면만 보기 때문이다.

 

앞으로 얼마를 더 집안에서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 지난 12월부터 비실거렸는데 올겨울은 이런 식으로 지나가나 보다. 이제 독감 2라운드에 접어든 것 같다. 아내와는 자세가 역전되어 이젠 내가 보살펴주어야 한다. 간호만 받고 있을 처지가 아니다.

 

바이러스가 지쳐서 떠나가시길 기다릴 수밖에 없다. 내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작은 독감도 이러한데 병원에 입원할 정도의 중병이면 어떻겠는가. 인간은 나약한 존재다. 우환은 예고 없이 찾아오고, 사소한 우연에 속절없이 무너진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는가.

 

대신 병이 가르쳐주는 교훈도 있다. 병을 통해서 주제 파악을 한다. 평범해 보이는 일상의 소중함도 깨닫는다. 독감 하나 앓으며 너무 거창한 얘기를 하는 것 같다. 어찌 됐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사다. 그래도 한 번 웃어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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