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축구와 국민성

샌. 2019. 2. 2. 12:01

나는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프로리그가 있다는 정도만 알 뿐, 무슨 팀이 있는지는 모른다. 축구 중계를 보는 일도 없다. 몸을 부딪치며 하는 경기는 대체로 싫다. 동료들이 축구를 하면 나는 벤치에서 구경하거나 주전자를 들고 다니는 역할만 맡았다.

 

직접 축구를 한 기억은 두 번이다. 대학생일 때 MT에 가서 어쩔 수 없이 운동장에 나간 적이 있다. 강촌에 있는 한 초등학교였는데 후반에 교체 멤버로 들어가서 10분 정도 뛰었다. 전원이 참가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이었다. 이때 날아오는 공을 헤딩하다가 죽는 줄 알았다. 머리가 띵 해서 한참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축구 선수들이 어떻게 헤딩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지 아무리 봐신기하다. 저러다가 머리를 다치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된다.

 

직장 생활을 할 때도 축구 시합에 한 번 뛴 적이 있다. 인원이 부족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들어갔다. 내가 공을 못 차는 걸 아는 주장은 골키퍼를 맡으라 했다. 몸이 둔한 내가 골문지기를 했으니 많은 점수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는 상대 선수와 부딪쳐서 결국은 절뚝거리며 물러났다. 이렇듯 축구에 관한 기억은 고개를 젓게 만든다.

 

그런데 이번에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아시안 컵 축구는 관심 있게 지켜봤다. 베트남 때문이었다.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 팀이 어디까지 올라갈지 궁금했다. 언더독으로서 분전하는 모습을 응원하고 싶었다. 결과는, 베트남은 16강전에서 일본에 져 탈락했고, 우리나라는 8강전에서 카타르에 졌다. 결승전은 어젯밤에 열렸는데, 카타르가 일본을 3:1로 물리치고 우승했다.

 

축구를 하는 스타일이 나라마다 다른데, 그 나라의 국민성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제일 눈에 두드러지는 팀은 일본이다. 잔 패스로 연결하며 골문 앞까지 가서 슛을 날린다.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하다. '일본스럽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대신 호쾌한 맛은 없다. 그래도 보는 재미는 상당하다.

 

중국은 투박하다. 기본기가 덜 되어 있는 것 같고, 상대를 대하는 태도가 안하무인이다. 심하게 말하면 무식한 축구다. 우리가 중국 사람들에게서 받는 인상이 축구에 그대로 드러난다. 탁구나 다른 스포츠는 잘 하면서 축구 발전은 더딘 게 이상하다. 이도 국민성과 관계된 건 아닌지 모르겠다.

 

베트남 경기를 볼 때마다 미국과 상대로 싸운 베트남 전쟁이 떠오른다. 모든 면에서 미국의 상대가 안 되었지만 악착같이 덤벼들어 결국 거인을 쓰러뜨렸다. 축구에서도 이런 악바리 근성이 보인다. 그러나 정신력만으로 계속 이겨나갈 수는 없다. 베트남 축구의 약점은 선수들의 체격이다. 몸과 몸이 충돌하는 축구에서 체격의 열세는 버티는 데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 축구는 일본과 중국의 중간 지대쯤 되는 것 같다. 세밀한 패스는 일본에 떨어지지만, 대신 파워가 있다. 그러나 개인기 없는 파워는 중국 꼴이 나기 쉽다. 잘 조화를 갖추어야 하는 숙제가 있다. 이번에 손흥민 선수가 뛰는 걸 보았는데 기대가 커서 그랬는지 좀 실망스러웠다. 세계 일류 선수로서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축구 전술도 그 나라 국민성과 잘 어울려야 좋은 성적을 내는 것 같다. 선진 축구를 무조건 받아들인다고 될 일은 아니다. 승패를 떠나 우리 식의 축구를 할 때 박수를 받을 것이다. 지더라도 후회 없이 아름답게 질 일이다. 이번 아시안 컵 경기에서는 각 나라의 기질과 축구를 연계시켜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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