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60.4kg

샌. 2019. 2. 15. 10:14

몸무게가 지금 같이 떨어진 것은 기억에 닿는 한 전에는 없던 일이다. 오늘 아침에 체중계에 올라갔더니 60.4kg이 나왔다. 작년 이맘때 66kg이 넘었으니 6kg이나 빠진 셈이다.

 

겨울에는 활동량이 줄어드니 보통 몸무게가 늘어난다. 그런데 이번 겨울에는 반대다. 속병 때문에 음식을 제대로 못 먹어서다. 소화가 안 되니 소식을 해야 하고, 기름진 음식은 먹지 못한다. 살이 안 빠질 수가 없다. 먹는 양을 생각하면 지금보다 더 빠져야 하는 게 맞다. 소화불량과 부글거림 증상이 이렇게 오래 가는 건 처음이다. 늙은이는 한 번 탈이 나면 회복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덕분에 좋은 점도 있다. 우선 몸이 가벼워서 경쾌하다. 65kg이 넘으면 둔하다. 느낌으로는 내 적정 체중이 61kg 내외인 것 같다. 나이 들면 조금은 살이 찐 편이 보기에는 낫다. 듬직한 풍채에서 노인의 원숙과 여유가 느껴진다. 살이 빠져 거울을 보니 홀쭉한 얼굴이 경망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몸 컨디션은 위장 상태만 제외한다면 지금이 좋다.

 

음식에 욕심을 내지 않고 간단하게 식사를 하니 여러모로 이득이다. 지금은 아예 식욕이 없다. 술, 커피는 물론이고 육류도 손에 대지 않는다. 뭔가 정신적으로 맑아지는 느낌이다. 앞으로도 이런 습관은 계속 지켜나가고 싶다. 40대 때 채식주의를 몇 년간 실천한 적이 있었다. 주위에서 별나게 살지 말라는 비아냥도 들었다. 밤골로 내려가는 결심도 그때 나왔다.

 

속이 불량하니 음식은 꼭꼭 씹을 수밖에 없다. 밥을 오십 번 넘게 씹으면 단맛이 난다. 반찬이 없어도 괜찮다. 맨밥 맛과 맹물 맛이 이렇게 좋은 줄 예전에는 몰랐다. 백미(白味)라고 부르련다. 담백미(淡白味)와 같은 말이다. 숨 쉬고 걷는 것 같은 일상의 귀함을 아는 느낌이다. 밥을 오래 씹으면 식사 시간이 길어지며 마음의 여유도 생긴다. 전에는 무시했던 것을 새롭게 경험하고 있다.

 

'심플 라이프'는 식사에서부터 실천되어야 한다. 탐식은 안 된다. 저녁에 TV를 틀면 대개 먹는 프로그램이다. 먹방이라고 한다. 그런데 음식을 먹는 출연자들이 너무 요란하고 게걸스럽다. 보통 저렇게까지 과한 동작으로 먹지는 않는다. 방송국에서 그렇게 과장된 표현을 요구하는가 보다. 음식을 먹는 데도 지켜야 할 품위가 있음을 생각한다.

 

이번에 속에 탈이 나면서 '식탁의 절제'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식탁 위의 음식은 다른 생명의 희생으로 차려진 것이다. 감사함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군대 있을 때는 1식3찬이 나왔다. 밥과 국, 반찬 두 종류다. 식사 후에는 남는 게 거의 없다. 앞으로 내 식탁도 군대 때를 본받고 싶다.

 

고등학생일 때 외할머니는 속이 아파서 고생하셨다. 아마 지금 내 나이쯤 되었을 것이다. 식사 뒤에는 항상 배를 주무르고 날 보고는 등을 두드려 달라 하셨다. 그리고 하얀 가루 소다를 한 숟가락씩 드셨다. 병원에 가실 줄도 몰랐다. 그런데 여든이 넘으면서부터 속병이 사라지셨다. 자연 치유가 된 것이다. 동물은 아프면 먹을 것을 끊거나 소식을 하면서 기다린다. 시간이 적당히 지나면 시나브로 씩씩하게 일어난다. 모계 쪽을 이어받은 나 역시 외할머니를 믿는다. 그렇게 되더라도 식사에서 절제의 미학만은 잊지 않으련다.

 

'길위의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봉은사 가는 길  (0) 2019.03.15
아내와 나  (0) 2019.02.26
축구와 국민성  (0) 2019.02.02
트레커 10년  (0) 2019.01.22
독감 2라운드  (0) 2019.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