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김희중 선생의 부음에 잠시 생각이 멎는다. 작가는 고등학교에 다닐 때 두 번의 개인전을 열 정도로 사진에 특출한 재능을 드러냈다. 그뒤 미국으로 건너가 동양인 최초로 내셔널 지오그래픽사의 편집장을 지냈다. 우리나라 사진가 중 세계적으로 가장 큰 명성을 가진 분이다. 오래전에 작가의 자서전을 겸한 에세이인 <가슴이 따뜻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를 감명 깊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김희중 작가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봉은사 가는 길'이라는 작품이다. 바로 이 사진이다.
이 사진에 대해서는 작가가 촬영 당시 상황을 설명한 적이 있다. 1955년 7월에 뚝섬에서 야외 촬영대회가 열렸다고 한다. 그때 고등학생이었던 작가는 유일하게 교복을 입고 참가했단다. 모델 촬영이 싱거워 작가는 나룻배를 타고 한강 건너 봉은사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이 장면을 만났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게를 진 엄마와 아이, 소나무와 강변의 포플러나무, 초가집 등 60여 년 전 우리의 모습이 카레라에 담겼다. 내용과 구도가 완벽한 작품이다.
작가는 이곳이 현재 경기고등학교 정문 부근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앞에 보이는 강은 한강 아니면 탄천일 것이다. 봉은사 앞으로 강이 흘렀고, 지금 코엑스는 강 위에 세워졌다는 말이 된다. 멀리 보이는 산은 아차산과 용마산 능선으로 보인다. 그때와 비교하면 상전벽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세상이 변했다. 봉은사 옆에서 나는 5년간 직장 생활을 했다. 사진에 나온 저곳을 매일 다녔으니 감회가 더하다. 60년이라는 세월의 격변이 보태져서 이 사진은 더욱 의미가 깊다. 만약 저 아이가 살아있다면 지금은 일흔쯤 되지 않을까 싶다.
처음 봤을 때 가슴에 파문을 일으킨 이 작품은 나에게 최고의 사진으로 남아 있다. 아무리 천재라지만 고등학생 때 이런 사진을 찍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우리가 떠나보낸 것, 받아들인 것이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 사진은 자꾸 돌아보게 한다. 60년 세월의 대비가 너무 극적이어서 생각은 길게 뻗지 못하고 아득해진다. 천 길 낭떠러지에 선 것 같기도 하다.
좋은 사진을 남겨준 분이 세상을 뜨셨다. 하늘나라에서 안식하시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