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미세먼지

샌. 2019. 3. 29. 12:07

아내는 아침에 일어나면서 미세먼지 수치부터 확인한다. 하루의 활동 여부가 그 수치로 결정된다. 집에는 인터넷으로 주문한 미세먼지 방지용 마스크가 몇 박스나 쌓여 있다. 그런 아내를 나는 호들갑 떨지 말라고 핀잔 주고, 아내는 무지하면 병을 키운다고 나를 타박한다. 외출할 때마다 '마스크를 써야 한다, 안 쓰겠다'로 서로 티격태격한다.

 

같은 공기를 마시지만 미세먼지를 대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아내처럼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이 있고, 나처럼 무딘 사람도 있다.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어떤 사람은 마스크를 쓰는 것이 미세먼지를 마시는 것보다 더 나쁘다고 말한다. 누구 말이 맞는지 헷갈린다.

 

미세먼지의 발생원부터 파악하는 게 우선일 텐데 그마저 정확한 데이터가 없다. 중국 영향이 몇 퍼센트인지부터 중구난방이다. 국내의 미세먼지 측정값도 믿을 수 없다. 내가 사는 광주의 경우 면적은 서울시와 엇비슷하나 미세먼지 측정소는 달랑 한 군데만 있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그 측정기가 광주를 대표한다고 볼 수 없다. 신뢰할 수 있는 기초 데이터부터 쌓아나가야 한다.

 

내가 경험한 7, 80년대 서울 공기는 지금보다 더 나빴다. 객관적인 측정값은 없지만 느낌이 그렇다. 서울 공기는 연탄 난방과 노후한 자동차에서 나오는 매연으로 가득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코안이 새까맣기도 했다. 시골 공기는 좋았지만 대도시는 엉망이었다. 요사이는 전국이 미세먼지로 몸살을 앓지만, 대도시만 따지면 지금이 낫다. 직장 또한 학교 교실이어서 늘 자욱한 먼지 속에서 살았다. 그때는 사무실에서도 담배를 피웠으니 환경이나 건강에 대해 무지했던 시절이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너무 과민하다고 느껴진다. 정부나 언론에서 사실보다 심각하게 다루는 측면이다. 일기 예보에 나오는 미세먼지 붉은 색깔이 더 불안감을 부추긴다. 덕분에 집집마다 공기청정기가 돌아간다. 마스크 없이 외출하면 큰일날 것 같다. 그러나 대증요법보다는 근원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 기초적인 조사와 연구부터 시작해야 한다.

 

어렸을 때 물을 사 먹는다는 다른 나라 이야기를 듣고 황당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도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이제는 공기마저 사 마셔야 하는 시대로 되었다. 외출할 때 마스크를 써야 하고, 집안에 공기청정기를 틀어야 안심이 되는 세상을 어찌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러다가는 마을 전체에 돔을 씌워 오염 공기를 차단하는 시설이 들어설지도 모르겠다.

 

미세먼지 세계 지도를 보면 아프리카와 인도, 중국을 연결하는 벨트가 위험 지역이다.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은 오히려 대기 상태가 양호하다. 미세먼지 발생원을 제거하는 노력이 선행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 산업화 시절에는 심각한 문제를 겪었던 나라들이지만 지금은 극복된 상태다. 그런 점에서 대기 문제를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도 없다. 우리에게도 시간이 필요한지 모른다.

 

미세먼지에 대해서 지나친 호들갑이거나 또는 무사태평한 태도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좀 더 냉정한 자세가 필요하다. 동시에 나 하나의 건강 차원을 넘어 전 지구적인 생태와 환경 문제로 인식의 폭을 넓힐 수 있어야겠다. 공기를 이렇게 더럽혀 놓고 무슨 인간다운 삶을 논할 수 있단 말인가. 미세먼지 자체보다 미세먼지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어떤 문제가 없는지 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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