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새벽꿈

샌. 2019. 4. 10. 12:12

산속에서 혼자 사는 초등 동기 S에게 놀러 갔다(실제로 S는 소백산 깊은 곳에 살고 있다). 황토로 직접 지은 단칸방의 집인데 하룻밤을 같이 자게 되었다. 그런데 집안 분위기가 귀곡산장처럼 으스스했다. 둘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억지로 잠을 청하는데 밖에서 오래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내 이름을 부르며 찾으시는 소리였다. 처음에는 외면했지만 너무 간절하게 부르셔서 문을 열고 나갔다. 하얀 소복을 입은 외할머니가, 여기는 위험하니 빨리 도망가자고 하셨다. 안 그래도 꺼림칙하던 차에 외할머니를 따라가리라 마음먹고, 방으로 들어가 S에게 가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S는 정색하며 밖으로 나가더니 문을 모두 잠가버렸다. 졸지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밖에서는 S가 외할머니를 해치는 소리가 들리고, 나도 곧 죽임을 당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S는 소문 흉흉한 연쇄살인마가 분명했다. 아무리 문을 밀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댔다.

오늘 새벽에 꾼 꿈이었다. 너무 으시시해서 한동안 잠들지 못했다. 대부분은 꿈을 꿨다는 사실만 알 뿐 내용은 흐릿한데 이번 꿈은 현실처럼 생생했다. 무서운 꿈이 꼭 그렇다. 친구가 살인마로 변신하다니 반전이 기막힌 꿈이었다. 외할머니가 나를 구하려 찾아왔지만 실패했다.

얼마 지난 뒤 꿈을 되새겨보니 꿈 내용이 처음 생각한 것과 반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나를 데리러왔다는 것은 저승으로 함께 가자는 뜻이 아닐까. S는 나를 안 보내기 위해 방에 가두고 문을 잠가버렸다. 살인마로 본 것은 내 오해였고, 오히려 나를 도와준 것이었다. 그렇게 해석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요사이 지인 중에 암에 걸린 분이 여럿 있다. 건강하게 지내던 분이 암 판정을 받는 걸 보면서 인생의 의미와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내일 일을 모르는 게 인생이다. 나도 수개월 동안 소화불량을 겪으며 혹시 위장에 나쁜 병이 생긴 게 아닐까, 의문이 들면서 불안하다. 내시경 검사를 받아야겠다고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만약에 내가 암 판정을 받게 되면 나는 어떤 태도로 임해야 될까, 를 많이 생각한다. 이젠 무슨 일이 닥쳐도 놀랄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만약 내가 암 판정을 받는다면 치료를 할까 말까를 우선 선택해야 할 것이다. 초기 암이고 완치율이 높다면 병원의 처치에 맡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방사선과 화학 치료까지 받아야 한다면 심각하게 고민할 것 같다. 암이 이제 그만 살라는 신호라면 그냥 받아들이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 나이쯤 되면 살 만큼 살았으니 생에 대한 미련도 그다지 없다. 건강하게 오래 살면 좋겠지만 하늘이 허락하지 않으면 어떡하겠는가. 너무 의술에 매달리고 싶지는 않다. 통증만 조절된다면 하늘의 뜻에 거역하지 않고 조용히 생을 마치고 싶다.

더 살아봐야 이제는 낙(樂)보다 고(苦)가 더 크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인간 본성을 표현한 속담일 뿐이다. 일찍 간다고 불행한 건 아니다. 오히려 때에 맞게 가는 것이 행복일 것이다. 그 때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생물학적 나이가 적든 많든 순명(順命)의 자세만은 잊지말아야겠다.

새벽꿈은 이런 여러 생각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꿈에서는 죽고 싶지 않아서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외할머니를 따라나서는 게 삶의 길이었는지 모른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우리 인생이다. 또한, 무엇이 좋고 나쁜지, 옳은지 그른지, 인간의 짧은 식견으로 어찌 판단할 수 있겠는가. 삶과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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