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트레커 10년

샌. 2019. 1. 22. 12:31

2008년 11월에 가입했으니 트레커와 함께 한지 10년이 넘었다. 일기장을 찾아 보니 그동안 함께 다닌 산과 길이 아련한 추억 속에 펼쳐진다. 10년 동안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많은 도움과 즐거움을 받았고, 그러면서 실망도 있었다. 10년 간의 산행 목록은 다음과 같다.

 

2008년

11월 강씨봉

12월 칼봉

 

2009년

1월  히말라야 랑탕 트레킹

2월  고대산

3월  가리산

6월  백덕산

7월  두타연

9월  소백산

 

2010년

3월  금학산

7월  비학산

11월 구봉상

12월 정암산

 

2011년

3월  아차산, 도봉산

11월 금강소나무숲길

 

2012년

1월  대금산

3월  아차산

4월  북바위산

5월  응복산

10월 갈기산

 

2013년

2월  금병산

3월  보리산

7월  중원산

10월 금오도 비렁길

 

2014년

1월  칠장산

7월  가은산

8월  검단산

 

2015년

3월  해협산

7월 일본 야쿠시마

10월 십자봉

 

2016년

3월  드름산

6월  백마산, 소백산

8월  성치산

9월  검단산

11월 소백산

 

2017년

1월  소금강

2월  뉴질랜드

 

2018년

11월 남한산성

 

국내 산행은 내용을 들여다보지 않는 한 기억이 멀다. 도대체 저 산에 갔던가 싶은 곳이 여럿이다.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해외 트레킹이고, 그중에서도 2009년 1월의 랑탕-고사인쿤트 트레킹이다. 트레커에 가입한 목적이 히말라야에 가기 위해서였다. 그때만 해도 산 자체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죽기 전에 히말라야 설산은 꼭 봐야겠다는 다짐이 있었다. 트레커는 같은 직장에 있던 동료가 소개해 주었다. 인연이란 묘하다. 그때 동료가 지나쳤다면 트레커와의 관계는 없었을 것이다. 내가 히말라야에 갈 수 있었을지도 의문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기이하게도 인연 속에는 또 다른 인연이 숨어 있었다.

 

랑탕에는 12명이 갔다. 트레커 회원 대부분이 함께 했는데, 신입 회원은 나를 포함해서 넷이었다. 그중 셋은 지금은 거의 나오지 않고, 연락도 잘 안 된다. 언젠가는 같이 만나 동기 모임을 하고 싶다. 랑탕 트레킹은 이제껏 가장 좋았던 추억으로 남아 있다. 열이틀 동안이었나, 히말라야 산길을 원없이 걸었다. 트레커에 제일 감사하는 부분이다. 이 좋은 기억 때문에 트레커와의 인연을 쉽게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히말라야는 언제 다시 한번 갈 기회가 생긴다면 좋겠다.

 

두 번째 해외 트레킹은 2015년의 일본 야쿠시마였다. 수령이 3천 년이 넘는 야쿠시마 삼나무를 만나서 의미가 컸다. 열여섯 명이 갔는데 조로 나누어서 능력에 따라 산길을 걸었다. 한 조는 어쩔 수 없이 내가 리더를 맡았는데 그런대로 재미가 있었다. 이 여행 뒤에 한 사람이 탈퇴하는 소동이 있었다.

 

세 번째 해외 트레킹은 2017년의 뉴질랜드였다. 렌터카를 빌려 남섬과 북섬을 일주하는 데 거의 한 달이 걸렸다. 긴 여행 기간에 쫓기듯 복작대는 생활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 취향이 일행과 다름을 확인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도 내용을 잘 확인하고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뉴질랜드 이후로 국내 산행도 뜸해졌다. 작년에는 딱 한 번만 동참했다. 산행 참여도로 치면 낙제생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 달에 한 번씩 트레커 탁구 모임이 있으니까, 얼굴은 잊지 않을 정도로 보는 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트레커에서는 나왔을지 모른다. 국내 산행에 참여 못하는 데는 가정 사정이 제일 큰 몫을 했다. 지금도 여전하다.

 

연 이태째 해외 트레킹에서 나는 열외가 되었다. 서운하고 화나는 일이었다. 그래서 쓴소리를 카페에 올렸다. 그럴 필요까지 있었나 싶다. 트레커에 기여하거나 협조한 게 거의 없다. 큰소리칠 자격이 없는 셈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나가면 되는 거지, 그러다가도 야박하게 인연을 끊기가 어렵다. 어쩌면 붙어있을 때 생기는 떡고물 때문인지 모른.

 

애증으로 얽힌 트레커다. 푹 빠졌다가 멀어지기도 한다. 트레커에서 완전히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사람 때문이다. 산을 좋아해서인지 세속의 오염에서 멀다. 맑고 착한 회원들이다. 그래서 만나면 반갑다. 스타일의 차이는 사소한 것일 수 있다.

 

앞으로 10년 뒤에는 어떻게 될까? 회원들 나이는 대부분 여든에 가까워진다. 그때도 산을 다니는 사람이 있을까? 나 또한 무탈하게 지내다가 '트레커 20년'이라는 글을 쓸 수 있을까? 많이 걷고 싶은 욕심은 있으나, 서산으로 해는 저문다. 일모도원(日暮途遠)이다. 사랑하기에도 짧은 세월에 누굴 원망하랴. 이런 꼴이어도 오늘에 감사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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