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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덕하게 살거다 / 손현숙

머리 실핏줄이 막혀서, 하도 기가 막혀서 덜컥 누워버린 늙은 엄마, 늙은 아버지가 병문안 오면 슬쩍 눈 흘기면서 대놓고 “가소, 마”한다 그리고 곧이어 “부도덕한 늙은이!” 혼잣말인 척 짐짓, 다 들리도록 중얼거린다 천 번도 더 들은 저 말, 삼강오륜으로 중무장한 우리엄마는 지금 입만 살아서 링거를 주렁주렁 달고 있지만, 평생 부도덕했던 우리 아버지 팔순을 넘기고도 정정하게 훠이 훠이 세상 끝까지 마실 다닌다 나, 이제부터 무조건 부도덕하게 살거다 도덕 찾다가 늙어, 어느 날 뒷목 잡고 넘어가느니, 요놈의 사탕 같은 세상 실컷 빨면서 들통 나지 않게 시치미 딱 잡아떼고 치맛자락 살살 흔들면서, 살거다 부도덕한 늙은이! 그 누가 뭐라 뭐라 씹어도 끄떡없는 아버지, 지금 엄마 등 쓸어준다 발 닦아준다 에그그..

시읽는기쁨 2010.07.15

아내의 메모

책상 위에 아내가 쓴 메모지가 놓여 있다. 어디에서 옮겨 적었는지 급히 쓴 흔적이 역력하다. 요사이 아내는 몸에 대해 노심초사하며 걱정이 많다. 2 년 전에 큰 수술을 받은 뒤로 아직도 후유증이 가시지 않았는데 또 가슴에 종양이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악성으로 진행되지 않는지 주기적으로 확인을 받아야 한다. 음식과 함께 몸무게에 주의하라는 경고도 의사에게서 받았다. 메모지를 보다가 특히 ‘암’이라는 글자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아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다. 본인은 그것 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할까 싶다. 내 생각 같아서는 병에 대해 너무 신경을 안 쓰는 게 도리어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은데 아내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옆에서 아무 힘도 되어주지 못하면서 자주 내 생각대로만 타박을 하기 일..

사진속일상 2010.05.14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 나태주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하나님, 저에게가 아니에요. 저의 아내 되는 여자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는 말씀이어요. 이 여자는 젊어서부터 병과 함께 약과 함께 산 여자예요. 세상에 대한 꿈도 없고 그 어떤 삶보다도 죄를 안 만든 여자예요. 신발장에 구두도 많지 않은 여자구요. 한 남자 아내로서 그림자로 살았고 두 아이 엄마로서 울면서 기도하는 능력밖엔 없었던 여자이지요. 자기의 이름으로 꽃밭 한 평 채전밭 한 뙈기 가지지 않은 여자예요. 남편 되는 사람이 운전조차 할 줄 모르고 쑥맥이라서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여자예요.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가난한 자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 저의 아내 되는 사람에게 너무 섭섭하게 하지 마시어요. -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 나태주..

시읽는기쁨 2010.04.02

몸살을 앓다

몸살을 호되게 앓았다. 지난주의 무리한 일정에 몸이 견디지를 못한 것 같다. 처음에는 열과 두통 때문에 잠을 들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게다가 온몸까지 저려와서 절로 비명이 나왔다. 끙끙대며 하루를 버티다가 결국은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고 약을 처방받았다. 그나마 신종플루는 아닌 것 같다고 하여 다행이었다. 지금도 약을 먹으면 좀 덜해지고 약기운이 사라지면 다시 아파온다. 그러나 여러 날을 결근할 수 없어 중무장을 한 채 출근하고 있다. 하필이면 추위까지 닥쳐 난방이 부족한 사무실의 한기가 더욱 차갑다. 이럴 때는 따스한 안방의 이불속이 무척 그립다. 아파서 블로그 일기를 거른 것도 블로그를 시작한지 6년 만에 처음이다. 근래에 감기몸살을 모르고 지냈는데 오랜만에 따끔한 맛을 보고 있다. 2009년..

사진속일상 2009.12.16

조심스레 뒷산길을 걷다

허리가 아프기 시작한지 36일째, 오늘은 집을 나와 뒷산길을 조심스레 걸어보았다. 산길과 숲의 내음이 그리워서였다. 올해는 가을 속에 있어도 가을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뒷산의 색깔이 시시각각 변해가는 것을 볼 뿐 그 속에 들 수는 없었다. 허리 통증이 이렇게 오래 갈 줄은 처음에는 정말로 예상치 못했다. 되돌아보니 20년 전 허리 수술을 받은 뒤 잘 지내다가 10년 전에 한 번 호되게 아팠었다. 그때도 휴직을 생각할 정도로 오랫동안 고생했다.그러니 거의 10년 주기로 긴 통증이 찾아오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할 나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걸어보는 산길에 감회가 새로웠다. 한 달여 전만 해도 날듯이 걸어다닌 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산길을 걷는 몸이 무겁고 생기도 없다...

사진속일상 2009.10.25

한의원에서 침을 맞다

나는 병원이나 약을 가능하면 가까이 하지 않으려 한다. 감기에 걸려서 약을 먹으면 일주일 만에 낫고, 약을 안 먹으면 7일 만에 낫는다는 말을 믿는다. 그러다 보니 사서 고생을 할 때도 있다. 이번이 그러하다. 허리가 삐끗한지 20일 째인데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오늘은 한의원을 찾았다. 침과 봉침을 맞고 부황을 떴는데 모두가 난생 처음 받아보는 치료법이었다. 물리치료도 신기하게 작동되는 기계들이 있어서 재미있었다. 결과가 어떨지는 모르지만 진즉에 병원을 찾았더라면 고생을 덜 했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필름을 되돌려보니 이번 통증의 발단은 빗속의 소백산 산행이었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하느라 한 손에는 우산 한 손에는 스틱을 잡고 계단길을 쫓기듯 내려온 것이 무리가 되었다. 그 자세가 허리에 굉장히 ..

사진속일상 2009.10.05

과유불급

10여 일만에 한강에 나가보다. 아직 몸은 완전하지 못하다. 전에는 일주일이면 회복되었으나 이번에는 꽤 오래 간다. 나이가 들면 모든 게 느려지는가 보다. 그래도 지금은 허리를 굽혀 머리라도 감을 수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그동안에 한강 풍경은 가을물이 많이 들었다. 강변에는 억새가 흰 물결을 만들고 있다. 이곳에 나오니 세월이 유수와 같음을 더욱 실감한다. 벌써 9월의 마지막 날이다. 몸이 불편하다는 것은 나를 떨어져서 나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동안 까불거리고 다니며 너무 자신만만했다. 몸과 마음이 한통속으로 기고만장해졌으니 하늘이 경고를 내린 것 같다. 너 본래의 모드로 돌아가라고.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샌, 너 제발 주제 파악 좀 하고 살자!

사진속일상 2009.09.30

지팡이를 짚고 산책하다

허리가 아파서 사흘째 자리에 누워 있다. 30대에 디스크 수술을 받은 뒤로 한 해에 한두 번은 연례행사처럼 이런 허리 통증이 찾아온다. 수술 후 디스크 증상은 사라졌으나 대신에 허리 근육이 약해졌는지 조금만 무리를 하면 근육이 결리는 이상이 생긴다. 그러면 허리를 펴기 힘들고, 몸은 말 그대로 S형이 된다. 병원에 가봐도 별 비방이 없음을 그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저 가만히 누워있는 게 제일 편한데 일주일쯤 지나면 증상은 절로 사라진다. 이번의 원인은 지난 주의 소백산 등산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찬 비를 맞으며 한 손에는 우산, 한 손에는 스틱을 잡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부리나케 하산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 같다. 그뒤에 니체를 읽는다며 두꺼운 책을 가방에 넣고 오래 걸은 것이 사태를 악화..

사진속일상 2009.09.21

살아야겠다

“살아야겠다!” 요즈음 아내가 혼잣말처럼 자주 하는 말이다. 작년에 큰 수술을 받고 차츰 회복되고 있었으나 최근에 몸 상태가 다시 나빠지고 있다. 조금만 움직여도 쉽게 피로해하고 특히 기억력이 완연히 떨어졌다. 집안일도 힘든 것은 하지를 못하고, 차도 오래 타지를 못한다. 한 번 무리를 하면 며칠 동안 꼼짝을 못한다. 지난주에는 억지로 함께 고향을 다녀왔는데 그 여파가 만만치 않았다. 그러다보니 본인 마음도 약해지는지 가족들에게 의지를 하려하고 그게 여의치 않을 때는 마음의 상처도 많이 받는다. 더구나 나나 아이들이나 살갑게 보살펴주는 성격이 못되니 서운함은 더 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나 역시 말 한 마디 하는 데도 조심스러워진다. 다른 때 같으면 그냥 웃고 넘어갈 것도 아내는 예민하게 ..

길위의단상 2009.09.18

손대지 마세요

30 대 중반에 디스크 수술을 받은 후 허리에 좋다고 의사가 권하여 1 년여 수영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덕분인지 허리는 정상으로 돌아왔고 지금까지 아무 이상 없이 잘 지내고 있다. 그러나 늘 물과 가까이 했던 탓인지 불가피하게 귓병이 생겨서 얼마 전까지도 고생하고 있었다. 염증은 오른쪽이 더 심했는데 귓속이 가렵고 진물이 나오는 증상이었다. 특히 여름이면 더해지는데 심할 때는 잠을 설치기도 했다. 그래서 오른쪽 귀는 늘 축축하고 지저분한 귀지로 덮여 있었다. 여러 차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그때뿐이고 다시 재발하는 바람에 완치는 거의 포기했다. 병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이놈과는 평생을 데리고 살아야 할 친구로 여기기로 했다. 그런 친구 중에 또 하나가 무좀이 있다. 군대에 다녀온 뒤에 생..

길위의단상 2008.12.21

아내가 퇴원하다

큰 수술을 받은 아내가 퇴원했다. 지난 달 22일에 입원했으니 꼭 열하루 동안 병원 생활을 한 셈이다. 머리를 감은 붕대는 그저께 풀었는데 두개골을 열고 수술 받은 흔적이깊었다. 이마 위로 해서 귀까지 30 cm 가까이나 길게상처가 나 있다. 아직도 아내는 발음이 분명하지 않고 기억도 오락가락 한다. 팔다리에는 시커먼 멍투성이다. 수술이 잘 되어서 다행이긴 하나 아내의 모습을 보면 여간 마음이 아프지 않다. 아내는 집에 와서도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계속 잠만 잔다. 지칠 만도 할 것이라 생각되지만 옆에서 지켜보노라면 여간 안스러운 게 아니다. 빨리 회복되길 기도한다. 열하루 동안 아이들과 교대로 병원 출입을 하며 아내를 지켜 보았다. 특히 아이들이 애를 많이 썼다.병원에서는 2인 병실에 있었는데옆 자리에..

사진속일상 2008.10.03

아내가 수술을 받다

한 달여 전에 아내는 '비출혈성 동맥류'라는 진단을 받았다. 전부터 편두통이 심했는데 우연히 MRI 촬영을 하게 되어 뇌동맥에 이상이 생긴 것을 발견한 것이다. 사진상으로는 포도송이처럼 혈관이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있었는데 문외한인 내가 보아도 금방 터질 듯 위험해 보였다. 더 큰 병원에 가서 정밀진단을 받으라는 권고를 듣고 서울에서 CT 등의 더 자세한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전과 동일하였고 가능하면 빨리 수술을 받으라고 했다. 지난 월요일에 입원해서 최종적으로 조영술 검사로 확인한 후 두개골을 열어서 이상 부위를 차단하는 수술을받았다. 처음에는 간단하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수술 부위가 뇌라서혹시 잘못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컸다. 아내를 수술실로 들여보낼 때는 더욱 안스럽고 안타까웠다.수술실..

사진속일상 2008.09.26

자각증상

일주일 가까이 입술이 부르터 있더니 이제야 아물어간다. 평상시 크게 무리되는 생활을 하지 않으니 피곤해서 입술이 부르트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럴 징조가 보이면 몸을 사리며 조심한다. 그런데 이번에 오랜만에 입술 양쪽이 부르텄다. 연일 바빴던 탓에다 지난 일요일에는 직장에 나가 근무한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그 일은 예상외로 힘이 들었고 내 체력에는 무리가 되었다. 의학용어 중에 자각증상이 있다. 자각증상은 몸에 이상이 생기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몸의 경고 신호다. 대부분의 병에는 미리 이런 자각증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몸살기가 생기거나 입술이 부르트는 것은 네 생활을 몸이 감당할 수 없다는 사인으로 보면 된다. 그러므로 자각증상은 고맙고 감사한 현상이다. 몸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방비해주는 역할을 ..

길위의단상 2008.05.03

급성 경막하 출혈

얼마 전 최요삼 선수가 권투 시합 중에 강펀치를 맞고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났다. 그 병명이 '급성 경막하 출혈'인데 뇌가 외부로부터 큰 충격을 받아 심하게 손상되며 부어오를 때 생긴다고 한다. 그런데 두개골에 가로막힌 뇌는 팽창할 여백이 없어 일단 붓기 시작하면 급격한 뇌압 상승이 생긴다. 이때 뇌가 밑의 약한 부분으로 빠지면서 호흡 중추가 있는 뇌간이 눌리면서 사망으로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이런 긴급 상황에서는 빨리 병원으로 옮겨 두개골을 열고 뇌압을 낮추는 처리를 해야 생명을 건질 수가 있다. 슬픈 소식을 접하며 불현듯 어릴 적에 나에게 일어났던 비슷한 사고가 떠올랐다. 아마 초등학교 4학년 때 쯤이었다고 생각된다. 자주 놀러갔던 이모네 집 뒷산에는 ㄱ자 형으로 생긴 큰 소나무가 있었다. 우..

길위의단상 2008.01.07

치과는 싫어

한 달째 치과 치료를 받고 있다. 차거나 더운 물이 닿으면 윗 어금니가 시큰거려서 병원에 갔더니 충치라고 했다. 그래서 신경치료를 하고 이를 금으로 씌었다. 이왕 간 길에 예전에 아말감으로 때운 이들 중 많이 상한 두 개는 아말감을 뜯어내고 다시 금으로 때웠다. 마지막 스케일링 하는 과정까지 포함해서 치과 치료는 정말 힘들고 싫다. 벌린 입으로 들락날락하는 금속성 기구들의 차가움, 뼈를 깎아내는 소름 돋는 소리, 목구멍에 고이는 탁한 액체, 가끔씩 찌르는 듯한 통증, 이 모든 것이 엄청난 인내를 필요로 한다. 주사 맞는 것과 치과가 제일 무서운 것은 아이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신경치료를 하고 금으로 씌운 이에 문제가 생겼다. 다음 날부터 아파오기 시작하더니 오후에는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정..

사진속일상 2006.09.16

봄 감기

봄 감기가 가족 전체에게 찾아왔다. 제일 먼저 아내에게 나타난 증상이 아이들을 거쳐 나에게까지 전해졌다. 아내는올봄에 특히 더 힘들어한다. 감기뿐만 아니라 몸 이곳저곳이 아파 몇 주째 바깥 나들이를 못하고 집안에서 지내고 있다. 우리 가족에겐 잔인한 봄이 되고 있다. 젊은 아이들은빨리 회복이 되는데 어른들은 아무래도 시간이 걸린다. 아내는 약과 병원을 무척 좋아한다. 좋아한다기 보다는 믿는 편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반면에 나는 되도록이면 병원이나 약 사용을 삼가한다. 한번 아플 때마다약을 먹어라, 병원에 갔다와라는 아내의 잔소리와, 안 먹는다, 안 간다라는 내 고집이 부딪쳐 마찰음이 난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감기의 경우에는 약의 효능을 나는 별로 믿지 않는다. 대신에 최상의 방법은 푹 쉬는 것이라고 ..

사진속일상 2006.04.04

아버지 / 윤재철

뇌졸증으로 쓰러져 의식이 점차 혼미해지면서 아버지는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기셨다 거기서 아버지는 몸부림치며 집으로 가자고 소리쳤다 링거 주삿바늘이 뽑히고 오줌주머니가 떨어졌다 남자 보조원이 아버지의 사지를 침대 네 귀퉁이에 묶어버렸다 나중에는 의식이 없어 아무 말도 못하면서 짐승처럼 몸부림만 쳤다 팔목이며 발목이 벗겨지도록 집으로 가자고 고향도 아니었다 집이나마나 창신동 골목길 셋방이었다 - 아버지 / 윤재철 작년 가을, 장인 어른이 돌아가셨다. 병원을 오가며 암 치료를 받으시다가 생의 마지막 날들은 집에서 보내셨다. 당신의 소원대로 당신의 방, 당신의 침대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셨다. 임종을 지켜본 모두들 평안한 마지막이었다고 말했다. 만약 병원에 있었더라면 목에 구멍을 뚫고 호스를 꽂..

시읽는기쁨 2005.10.24

감기와 복숭아

그저께 안산에 가서 바깥 찬바람을 오래 쐬었더니 코감기가 찾아왔다. 쉼 없이 재채기가 나오고 콧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약간의 미열을 제외하고는 오직 코에만 이상이 나타났다. 특이한 감기다. 그러니 오히려 짜증이 더 난다. 이틀간 나 죽었소 하며 침대에서만 버티었다. 어제 오후에는 겨우 내내 기다리던 눈이 살짝 내렸다는데 그것도 모르고 어두운 방 안에서만 지냈다. 소식을 듣고 창문을 열어보니 눈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오늘은 저도 질렸는지 감기가 슬슬 떠날 채비를 하는 것 같다. 이때 마지막 아듀의 순서는 복숭아 통조림이다. 감기와 복숭아 통조림과의 연결은 그 연원이 언제인지 모를 정도로 나에게는 역사가 길다. 그것은 영양 보충제이면서 몸살의 특효약이다. 몸이 좋지 않으면 아내의 시장바구니에는 늘 복숭아 ..

사진속일상 2005.01.09

커피 반 잔

속이 탈이 나서 일주일째 죽이나 싱거운 밥을 먹으며 지내고 있다. 좋아하는 술과 커피는 입에도 대지 못한다. 일년에 한 두 차례, 알코올과 커피가 과할 때는 꼭 이렇게 탈이 난다. 원래 위와 장이 부실해서 작은 찬 기운에도 설사가 나는데, 사실 술, 고기, 커피 같은 것이 내 몸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어쩌다 이런 걸 과용하게 되면 속이 쓰리면서 이상 징후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럴 때 상당 기간 기호품을 끊고 음식을 조심하면 다시 원 상태로 회복된다. 오늘은 옆 사람이 마시는 커피 향기를 견디지 못해 반 잔만 타서 마셔본다. 그리고 입안에 감도는 향기를 천천히 음미한다.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행복이다. 오늘따라 먹고 싶은 것도 많다. 튀김도 먹고 싶고, 크림빵도 먹고..

사진속일상 2004.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