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아버지 / 윤재철

샌. 2005. 10. 24. 11:53

뇌졸증으로 쓰러져

의식이 점차 혼미해지면서

아버지는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기셨다

 

거기서 아버지는 몸부림치며

집으로 가자고 소리쳤다

링거 주삿바늘이 뽑히고

오줌주머니가 떨어졌다

남자 보조원이 아버지의 사지를

침대 네 귀퉁이에 묶어버렸다

 

나중에는 의식이 없어

아무 말도 못하면서

짐승처럼 몸부림만 쳤다

팔목이며 발목이 벗겨지도록

집으로 가자고

 

고향도 아니었다

집이나마나 창신동 골목길 셋방이었다

 

- 아버지 / 윤재철

 

작년 가을, 장인 어른이 돌아가셨다. 병원을 오가며 암 치료를 받으시다가 생의 마지막 날들은 집에서 보내셨다. 당신의 소원대로 당신의 방, 당신의 침대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셨다. 임종을 지켜본 모두들 평안한 마지막이었다고 말했다. 만약 병원에 있었더라면 목에 구멍을 뚫고 호스를 꽂아 가래를 빼내며, 며칠간 아니면 몇 달간 생명을 더 연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당신 뿐만 아니라 지켜보는 가족들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시간의 연속일 뿐이었을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품위있게 죽을 권리가 있다. 그리고 우주의 품으로 돌아갈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생명의 순리이다. 그러나 현대 의술은 오직 생명 연장에만 목적이 있는 것 같다. 문명 속에서 젖어 산 현대인들은 죽을 때까지도 문명의 덫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내 생의 마지막 순간이 아름답고 품위있게 마무리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앞으로의 의학은 단순한 생명 연장보다는 아름다운 이별이 되도록 도와주는 방향으로 전환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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